기고-진주사직단 복원을 간절히 바라면서
기고-진주사직단 복원을 간절히 바라면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7.26 18:3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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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진주사직단 복원추진위원장
 

최진수/진주사직단 복원추진위원장-진주사직단 복원을 간절히 바라면서


종묘사직이라 함은 왕실과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이는 국가 자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자 저하께서는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이어 갈 분이십니다”라고 하듯 도읍을 정하고 궁궐의 건물을 배치하는 기본 원칙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라 하였으니 국왕이 있는 궁궐을 중심으 종묘를 좌측에, 사직은 우측에 둔다는 뜻이다.

종묘는 조상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지내는 곳, 즉 왕조의 조상신들을 모시는 의례장소이다. 사직은 땅을 주관하는 사社신과 곡물을 주관하는 직稷신을 뜻하며 농경의 성공을 비는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나라의 관리들이 백성을 섬기는 마음이 묻어있는 곳이며 가뭄이 심하거나 풍년을 기원할 때는 중앙에서는 임금이 지방에서는 수령이 기우제와 기곡제를 지내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직단이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인 것으로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991년(성종 10)에 사직을 세웠으며 1014년에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수축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는 한양의 경우이고 동국여지승람(1530년발행), 진양지(1623년발행), 진주목읍지(1895년발행)에 의하면 진주에도 “주州의 서西쪽 오리五里 대룡사大龍寺의 위쪽에 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진주의 사직단은 600여 년 전에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600여 년을 이어오던 지역의 중요 문화유산의 정신이 일재 강점기의 문화말살정책에 의하여 그 맥이 단절되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본래의 뜻은 사라지고 토지는 개인문중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며 소유문중의 안위를 위하여 종원들이 모여 봄·가을로 제향을 지내고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유권자인 문중에서 제사를 모시는 제단으로 사용하면서 원형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였으니 지금의 행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생각되어 문중 분들의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 다행한 일이라 생각된다. 인근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60여 년 전만해도 좌판과 주위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후에 농로가 개설되고 차량이 통행되면서 중요 시설물인 좌판은 전부 도적당하고 받침석과 담장만 남아있을 정도이다.

우리와 가까운 산청군 단성의 사직단은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며 서울 사직공원의 사직단, 부산 사직동의 사직단은 기초조사를 마무리하고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계획중이라고하며 경기도 수원사직단은 수원시의회에서 복원을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곳이 자료 수집을 통한 복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상봉동지를 편찬하면서 사직단의 상태를 알게 되었으며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절감하고 현 상태의 보존과 복원을 위하여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진주사직단 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진주시에 '경상남도 문화재 지정 신청서'를 접수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중요문화유산인 사직단이 보존, 조사, 복원되어 본래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시대에 부합하는 문화공간과 관광명소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시민들의 깊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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