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진주천년의 뿌리(Ⅱ)-주체정신(主體精神, Subjective spirits)
칼럼-진주천년의 뿌리(Ⅱ)-주체정신(主體精神, Subjective spirits)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8.20 18: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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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 교수·진주문화원 향토문화 연구소장·강신웅 향토인문학 아카데미 원장

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 교수·진주문화원 향토문화 연구소장·강신웅 향토인문학 아카데미 원장-진주천년의 뿌리(Ⅱ)-주체정신(主體精神, Subjective spirits)


주체(主體)라는 용어는 주관(主觀)이니, 독자(獨自)니 그리고 어쩌면 독립(獨立)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유사어(類似語) 일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주체라는 그 용어는 내면에는 항상 외로움, 고독함 심지어 불안감이라는 의미를 동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체라는 단어의 최종적 표현은 주인의식이 매우 강하다는 말로 요약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천년 이상을 살아온 진주 사람들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역사의 범주에서 고비마다 굽이마다 또 한편으로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중증(重症) 상처의 고통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지역인들의 진주 사람에 대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뜻밖이다. 그것은 바로 진주 사람들은 한마디로 매우 강인한 주체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 정조 때 대사간인 윤행임(尹行恁)은 조선 팔도 각지역인에 대한 개성을 네 자로 기술하면서, 경상도 진주인을 일러 “태산교악(泰山喬嶽), 설중고송(雪中孤松)”이라고 비유했으며, 또 영조 때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은 경상도인을 일러 “낙선호의(樂善好義)하는 매우 착한 사람들”이라고 기록했다.

우리나라 역사는 수없이 많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과 억압 때문에 소위 사대주의(事大主義)라는 것이 일찍부터 생겨났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그들의 조선 문화 말살정책으로 민족의 자주적 전통이 뿌리 채로 흔들리게 되었다. 그 후 식민지 시대로부터 해방은 되었으나 여전히 우리 고유의 주체정신은 간 곳이 없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자주성과 개성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더욱 한 때는 우리의 문자와 언어조차도 사라질 지경에 이르고 보니, 긴 세월 우리에게 고유했던 주체정신이나 전통문화까지도 원래대로 회복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직 우리 이곳 진주에서만이 주체정신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1592년 임진왜란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은 3800명으로 왜군 2만여 명의 공격을 받고 6일간치열한 공방전 끝에 임란 삼대첩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으로 조선 역사상 청사에 길이 높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듬해 계사년 왜군이 12만여 명의 병력으로 다시 진주성을 공격하니, 11일간 처절한 각고의 전쟁 끝에 끝내 진주성이 무너졌으며, 이 싸움에서 우리 삼장사와 성안의 7만여 민, 관, 군 모두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인의 그 기개와 주체정신은 결코 꺾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관련된 또 다른 예로 왜군의 전승연에 참석한 의기(義妓) 논개는 의암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절함으로써 거룩한 민족의 꽃으로 산화된 경우도 있었다. 특히 당시 지방에서는 임란으로 처절하게 유린(蹂躪)을 당하고 있는데도 중앙정부에서는 백성을 보호하고, 국토를 지켜야할 의무감은커녕 그 어떤 대책도 없이 그저 부패와 무능이 만연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난 진주 선열들의 그 기개와 지혜의 산물인 애국의병활동인데, 그것의 바탕은 바로 우리 진주어른들이 갖고 있었던 주체정신과 저항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당시의 의병활동은 지역이나 시기적으로 상황과 지리적 여건에 따라 성격은 좀 달라서, 호남의 의병은 근왕정신(勤王精神, 나라가 살아야 백성일 살 수 있다)을 의병 기병의 이유로 내세울 수 있고, 영남의 의병은 그 기병의 이유로 우선 가까운 향토가 지켜져야 나라가 지켜질 수 있다는 소위 향토보위(鄕土保衛)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상기의 두 의병정신의 바탕은 지역에 구분 없이 진주인 천년역사에서 축적된 그들의 주체정신임이 확실하다.

다음 호에서는 진주인의 또 하나의 소중한 평등정신에 대해서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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