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딸과 거짓말과 도둑질
아침을열며-딸과 거짓말과 도둑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8.22 18: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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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딸과 거짓말과 도둑질


나는 딸이면서 엄마다. 내가 아직 엄마가 되기 전 딸이기만 하던 때에 도둑질을 세 번 정도 했다. 비교적 정확히 기억나는 것만을 톱아 보니 딱 네 건이다. 거짓말을 한 것은 헤아릴 수도 없다. 따라서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네 가지 도둑질은 이제야 고해성사를 하게 되어 누구에게랄 것 없이 그냥 감사하다. 도둑질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 찜찜하긴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추억이 됐다. 아니면 아직 어린시절이 기억나니까 나는 그다지 폭삭 늙은 것은 아니라는 위안인지도 모르겠다. 후자라면 많이 쓸쓸하다.

처음 도둑질은 부모님들이 보관하고 있는 돈을 훔친 일이다. 지금의 만원짜리 지폐와 비슷하게 생긴 백원짜리 지폐를 훔쳤다. 그 백 원의 가치로 치면 지금의 십만 원이지 싶다. 과자가 귀하던 때인지라 그것이 먹고 싶어 사고를 친 것이다. 장롱 깊숙이 있는 지갑을 꺼내 백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과자를 샀다. 그야말로 한보따리 과자를 들고 보니 어디 숨어서 먹을 곳이 적당하지 않았다. 과자 한보따리를 들고 들판으로 나갔지만 들판엔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더 멀리 달렸더니 강둑이 나왔다. 강둑에서 혼자서 과자를 먹는데 금방 질려버렸다. 맛이 없기도 하고 배도 부르고 지루하기도 해서 다 버려버렸다. 그때 이후로 나는 과자를 잘 먹지 못한다. 그리고 한번 더 하려다 걸려 엄청 맞았다. 또 한 번은 초등학교 3학년 당시 반장이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돈 30원 훔쳤고 이건은 완전범죄로 끝났다. 다음은 먹다 만 떫은 감 삭힌 것 한 개, 너무 배가 고파서.

나는 이제 엄마가 되었다. 딸의 일상적인 거짓말에 짜증을 내고 있다. 이 딸 위로 아들인데 이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과정 내내 전교 일등을 석권했다. 그러다 보니 얼핏 아들에게 애정이 집중되는 듯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딸은 엄마가 자신을 오빠보다 덜 사랑한다며 늘 불만이다. 그 불만은 시기와 질투의 형태로 표출되다 보니 본인도 괴롭고 보는 사람은 더 괴롭다. 아들과 미리 짜고 딸한테만 애정을 쏟아도 불만이다. 하도 밉상스러워 친구에게 의논을 했더니 아이라서 그렇다고, 아이를 어른인 내 입장에서 보니까 그렇다고. 어쩔??

내 비상금을 수차례에 걸쳐 바닥을 내고 급기야 내 카드를 들고 나가 수차례에 걸쳐 긁다가 꼬리가 잡혔다. 도둑질이 시작된 것이다. 기가 막혀 친구에게 의논했더니 커는 과정이라고 너도 했지 않느냐고 역시 아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커는 과정 두 번만 있으면 사람 잡겠다고 내가 투덜거렸다. 친구가 웃으며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조차 짜증이 난다. 누굴 약을 올리는 거야,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친구에게 순종한다. 친구는 고아가 된 조카들 셋과 자기 자식 둘, 합해서 다섯을 한꺼번에 키운 여신이니까.

상대적으로 횟수가 적은 도둑질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거짓말에 비하면 나은 편일까? 거짓말이 습관이 된 듯 안 해도 되는 거짓말까지 한다. 금방 들통이 날 것인데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중얼거린다. 번번이 ‘죠 팩’ 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다. 별 협박을 다 해보지만 말짱 꽝이다.

종남이청, 바다와 같이 파아란 색은 '남'이라는 식물에서 나왔지만 거듭 물들임으로써 외려 남보다 더 짙은 파아란 색이 된다는 것인데 부모와 자식도 이와 같은 이치다는 것이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친다. 부모가 끊임없이 좋은 본을 보이며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결국 부모가 자식이 분명히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끝까지 믿어주어야 자식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다. 전에도 친구의 충고를 믿어서 잘 못 된 적이 없다. 친구도 다 그렇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꾹 참고 믿어주는 수밖에 달이 도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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