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여성 항일공적 기념탑 세우자
임진왜란 때 공적의 절반은 여성들에게 있고 계사년 희생의 절반은 여성들에게 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5년 10월 1일자에 보면 “김시민이 여성들을 남장(男裝)을 시켜 화약을 종이에 싸서 풀로 묶어 성위에 감추게 하고 대장간에는 가마솥을 비치하고 물을 끓여 대기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라고 했다.
“여성들로 하여금 일본군이 성벽을 기어 오를 때 돌을 굴러 내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굴러 넘어져 다치거나 죽게 만들었는데 쓰러진 시체가 삼대처럼 즐비하여 일단 일본의 공격을 완전히 좌절시켰다” 라고 했다.
장윤현.김태백.하제 장군 등은 수문장으로 진주성을 지키다 전사했는데 장윤현 장군의 부인 성산이씨는 이담의 딸인데 수성의 공적이 있다.
류복립 장군의 부인 2명은 모두 전주 이씨 인데 수성의 공적이 있다.
송제 장군의 부인 능성 구씨도 수성의 공적이 있는데 송제 장군이 전사하자 혈서를 쓰고 자결했다. 고종후 장군의 부인 의령 남씨와 고성 이씨 등도 수성의 공적이 있다. 최경회 장군의 부인 나주 김씨도 수성의 공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장군들의 부인, 부사 부인, 현감부인, 현령부인, 도사 부인, 훈도부인, 이방 부인, 호방 부인, 예방 부인, 별장 부인, 가장 부인, 의병장 부인 등 지도급의 부인들도 수성의 공적을 세우고 적의 손에 맞아 죽고 칼을 맞아 죽었고 스스로 자결한 이들까지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남장을 한 여성들도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했는데 심리전 차원에서 저녁 시간에 악공을 불러 거문고를 타고 퉁소를 불게 했는데 이는 아군의 심리적 안정과 왜군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부상병을 치료하고 위문하는 일도 여성의 역할이었다. 여성들의 공적이 절반이며 희생의 절반은 여성이기 때문에 조경남의<임진잡록>에도 여성들의 공적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민·관·군이 합세하고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식사와 물을 준비했으니 오히려 여성들의 공적이 절반을 넘어 80%라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대구에 가보면 국채보상운동을 기리는 비석, 동상 기념관외에 별도로 여성들의 공적을 기리는 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진주성에도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을 기리는 기념조형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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