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권태’론
“인생이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참으로 진리다. 그러나 언뜻 들으면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욕망이란 것은 프로이트나 라캉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워낙 유명한 주제니 누구나가 곧바로 수긍할 것이다.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철저하게 우리를 지배하는 온갖 ‘싶음’들이다.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다. 뭔가를 갖고 싶고,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 …. 나도 여기저기서 이 주제를 언급했었다. 그런데 ‘권태’란 것은 이 문장에서 무슨 의미인지,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의 이 말은 쉽게 거부하기 힘든 무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 그런가요?’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거기까지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런 권태를 다스리는 철학. 그것을 통해 저 욕망을 다스리는 철학. 좀 바보같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기회 있을 때마다 ‘원점으로 되돌아가보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흔한 말이다. 하지만 흔한 말이라고 해서 그 철학적 가치가 덜한 것은 절대 아니다. 무언가가 처음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것은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던가. 그 시점에서 그것은 절대로 시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 빛을 다시금 떠올리고 되살려보는 것이다. 그런 것이 하나의 철학이 될 수 있다.
한때 그렇게 반짝이며 우리를 움직이던 많은 것이 있었다. 기술입국, 수출입국, 교육입국, 잘살아보세, 민주화 … 그 구호들은 우리의 가슴 벅찬 꿈이었다. 말하자면 국가의 욕망이었다. 우리는 그 중 많은 것을 성취했다. 그런데 지금 … 우리는 권태에 빠져 있다. 다 그렇고 그런 뻔한 것이 되고 말았다. 원점으로 한번 되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반드시 새로운 것만이 욕망의 대상이 되란 법은 없다. 오래된 골동품, 오래된 와인, 오래된 아내가 더욱 더 가치있음을 상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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