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홍범도 장군 탄신 150주년
진주성-홍범도 장군 탄신 150주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8.30 18: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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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홍범도 장군 탄신 150주년


홍범도(洪範圖)장군은 대한독립군이 국내로 진입해 수차례 일본군에 타격을 주자 일본군은 1920년 6월 대병력으로 두만강 유역으로 공격해 왔다. 이 때 홍범도 장군, 최진동 장군 등이 간도의 삼둔자 일원에서 일본군을 물리쳐 승전했다.

홍범도(1868~1943)장군은 일본군이 회복전투를 위해 대대병력으로 봉오동으로 쳐들어오자 봉오동 깊은 골짜기로 유인해 대승전을 달성했다.

그의 모친은 태어나자 곧 사망하고 부친도 9살에 죽어 고아처럼 살았다.

군졸을 모집할 때 15살에 합격해 진위대 우영에 배치되어 나팔수로 3년간 근무했다.

강원도 고성군 신계사에서 머리를 깍고 중이 되고 인근에 사는 이옥녀를 만나 임신까지 되었으나 함경도 처가로 가다가 부인을 탈취당한다.

강원도 회양에서 사냥기술자를 만나 각종 무술과 호랑이 잡는 기술도 배웠다.

의병 40여명을 모아 훈련시키고 안변을 거쳐 철원으로 진출했다. 이 때 일본군 100여 명과 전투하다 김수협 등이 전사하자 평안도로 옮겨 친일파 처단과 탐관오리들을 처단하게 된다.

함경도 북청에서 다시 부인을 만나니 아들이 7세가 있었고 두 번째 아들을 낳았다.

190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엽인계의 대장인 포연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05년에는 태양욱, 차도선 장군과 함께 후치령을 근거로 일본군을 공격하고 의병 1천여 명을 모아 37회 전투를 감행했다.

홍범도 장군은 안도현 명월진에서 의병과 포수를 모아 4000여명으로 대한독립단을 창설하고 사령관이 되었다. 연합해 북로 제1군 사령부 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봉도동(현 도문시)에서 독립군 400여명 일본군 300여명이 1920년 6월 7일 4시간동안 극심한 전투가 전개되었고 일본군 157명 전사. 중상 200여명이었으나 아군 15명만 전사했다.

또 다시 1920년 10월 21일부터 김좌진, 안무, 최진동 등과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 독군부 사령관 홍범도의 합동작전으로 유명한 청산리 백운평 전투가 전개되었다.

독립군 1940명, 일본군 7000여명이 싸워 일본군 전사자 1254명이었다.

1937년 연해주 조선인들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할 때 러시아로 가서 재혼한 아내와 여생을 마치게 된다. 카자흐스탄 묘 앞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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