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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진주 의병장 노응규 순절 110주년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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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6  18: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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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의병장 노응규 순절 110주년

노응규(盧應奎)장군이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이 강제로 시행되자 친일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상경했다. 그러나 실패하고 진주로 귀향했다. 1896년 2월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점령해 왜인들과 대항하게 된다.

노응규(1861~1907년)선생은 김해부사 허전(許傳)선생의 문하에서 사서삼경을 배우니 충효정신을 터득했고 호를 신암(愼菴)이라 했다.

노씨의 시조는 중국이며 중국 범양 사람 노수가 안록산의 난을 피해 9형제가 정착하게 된다.

노응규 장군은 안의에서 거병하여 서재기를 선봉으로 삼고 정도현, 박준필, 최두현, 최두연, 임경희, 성경호 등과 함께 의병을 모아 의병진을 편성했다.

의병을 이끌고 경남의 중심지 진주성에 당도하니 새벽에 관찰사. 경무관 등이 성을 버리고 삼가현으로 도주했다.

노응규 장군이 진주성을 점령해 성내에 주둔하니 진주부민들은 정한용(鄭漢鎔)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성외에 주둔했다.

이 때 전 찰방 오종근. 전 수찬 권봉희. 선비 정재규 등이 의병을 인솔하니 진주의병은 수 천 명에 달했다.
대구의 관찰사 이중하가 관군을 이끌고 의령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주 의병진에서 야간 기습 작전으로 관군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의병진은 문산, 반성, 군북을 지나 마산을 거쳐 김해로 진격하고 구포에서 일본군을 괴멸시켰다.

4월 12일 김해 평야에서 왜군과 전투가 전개되어 적군 4명을 죽이고 진주로 철수했다. 4월 24일 밤 관군이 진주성으로 쳐들어오자 속수무책으로 의병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

전남 기우만에 의탁해 있을 때 재기를 노리다가 임금에게 상소문(上疏文)을 올리니 비답이 내렸다.

<고종실록>34년 10월조에 상소문 전문이 실렸다. 고종임금이 비답하기를 “사정을 알았다. 네가 능히 네 죄를 아니 가상하게 여긴다. 허물을 늬우치고 새 출발이 너의 도리다”라고 했다.

1902년 10월 규장각 주사, 의관, 동궁시중 등을 역임했고 이후 최익현 막하에서 활동하고 경부선 철도 파괴. 열차 전복 등을 감행했다.

1907년 1월 한성진공작전을 수행 중 체포되었고 1907년 2월 19일 서울 경성감옥에서 순국하니 110주년이다. 1977년 12월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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