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멍석펴고 함주공원에서 영화를 보다.
기고-멍석펴고 함주공원에서 영화를 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9.07 18:3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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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석/정당인·전 통영부시장
 

이학석/정당인·전 통영부시장-멍석펴고 함주공원에서 영화를 보다.


내 고향은 칠서면 계내리 진동마을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내 어릴 적 극장은 이룡초등학교 운동장에 펼친 가설천막극장이 유일했다. 시골엔 추석이 지나고 나면 좀 한가하다. 더위는 좀 풀이 꺾였고, 아직 추수도 멀었다. 어려우나마 추석에 얻어 입은 신이나 옷가지도 외출을 부추긴다.

그렇다. 당시 우리의 외출이라 해야 강 건너 창녕 남지 오일장에 가거나 칠원에 서는 오일장에 나가보는 것이 큰 마실이다. 어머니나 동네 누나들은 참빗과 동동구리분을 사고, 아버지들은 소 판 돈으로 모처럼 뜨끈한 돼지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을 거하게 걸치시고 갈지자 걸음을 걸으며 돌아오는 풍경이 흐뭇하고도 생생하다.

그렇게 가을이 시작되면 우리는 학교운동장과 시골장터등에 서는 가설 극장에서 ‘울고 넘는 박달재’나 ‘저 언덕을 넘어서’ 같은 영화들을 보러 간다. 낮고 명료한 저음에 맑은 눈빛을 빛내던 최무룡이 나온 영화 ‘외나무다리’ 같은 영화도 그곳에서 보았다.

낮엔 삼륜차에 스피커를 달고 마을마다 흙먼지 날리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외나무다리가 여러분을 찾아 왔습니다. 오늘은 일찍 저녁을 먹고 손수건을 준비하여 장터가설극장으로 나와 청춘남녀의 진한 사랑얘기를 즐겨보시기 바랍니다.”하고 외치는 광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호주머니에 든 잔돈을 세어보며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오리를 걸어서 그토록 두근대는 마음으로 가설극장으로 향한다. 형들은 제법 멋을 부리며 손수건을 목에 걸었고, 누나들은 애교머리 늘어뜨리고 브라우스 옷깃을 매만졌을 것이다. 그 길에서 본 별은 어찌나 크고 밝았던지, 우리는 콧노래 흥얼거리며 오늘 일어날 일들을 예감하기도 했다.

그런 추억을 되새기며 함주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오늘의 영화는 정글북이다. 더운 여름을 날려 보내기엔 이곳이 딱 좋다. 영화는 무료이고, 내용도 재미있다. 건전한 환타지 영화이므로 가족끼리 봐도 좋다.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이 영화는 러디어드 키플링의 고전동화를 영화화하였다고 한다. 늑대에게 키워진 인간의 아이 ‘모글리’가 정글의 무법자인 호랑이 ‘쉬어칸’의 위협을 받고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겪는 생생한 모험담이다. 그 험난한 여정에서 동물 친구들과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는 흥미진진한 과정을 잘 엮었다.

함안군에서는 군민들의 여가와 문화향유 기회 확대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직원들의 군민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 따뜻할 수 없다. 이런 ‘야외 돗자리 무료 영화제’는 8월 열대야 기간인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매일 오후 8시, 함주공원 다목적잔디구장 야외무대에서 개최된다고 하니 어찌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우리는 흔히 시골 살이에서는 문화 욕구 해소의 문제점을 꼽는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면 아쉬운 대로 문화향유의 시간을 얻게 된다. 애써 공무원들이 이런 자리를 만들어도 잘 나오지 않고 푸념만 늘어놓는다면 기회 제공자들은 힘이 빠진다.

아내와 함께 정글북을 보면서 과거 시오리 길을 걸어서 가설천막극장으로 향하던 날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날을 떠올릴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이런 무료영화상영 서비스 덕분이다. 고향 함안에 와서 모처럼 즐거운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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