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바위…기암괴석의 향연
돌과 바위…기암괴석의 향연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5.23 16: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장흥 천관산

▲ 등산객이 양근암 코스로 오르고 있는 모습. 배경은 바위로 이뤄진 천주의 숲.
천관산은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가야산이 불꽃을 닮은 바위의 산이라면 천관산은 천주(天柱)의 숲이거나 왕관을 닮은 기묘한 바위산이다.
집채만한 크기의 기묘한 바위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또 그런 바위가 바위틈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어 금시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다. 모골을 선연케 하는 위험이 있지만 저릿한 아찔함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조형의 부자연스러움이 외려 감탄사를 자아낸다. 기둥처럼 생긴 바위가 아래는 얇고 위로 향할수록 커지고 두꺼워진다. 돌과 바위, 그 뒤에 또 바위, 천관산 고스락지대는 바위의 향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장 화려한 형상을 보여주는 곳은 금강굴에서 환희대에 이르는 구간.
왕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집트의 카르나크 기둥이나 그리스 아테네의 폐신전 제우스기둥을 닮았거나 혹은 석회암동굴 석주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 구간은 기둥과 석주가 숲을 이룬다. 필시, 하느님의 조화, 조물주의 의도된 조형이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이 풍광을 보고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이라 했을까. 천관산의 의미가 그렇다.
그것만 있지 않다. 숨 가픈 석주의 숲을 빠져나가 환희대에 서면 산은 또 한번 변신한다. 환희대를 지나 이산 최고봉 연대봉까지는 수 십만평에 달하는 평원과 부드러운 능선 위에 억새가 바다를 이룬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경치를 보여준다.
매년 가을에 억새평원에서 천관산 억새재가 열린다. 그래서 천관산은 바위의 숲, 능선을 장식하는 억새의 숲을 동시에 볼수 있는 그리 흔치 않는 명산이다.
일찌감치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천관산(723m)은 장흥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으며 1998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기바위, 사자바위, 부처바위 천주봉 등 기암괴석의 이름난 바위들이 제각기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자연조형물의 전시장이라 할만하다.
산 중턱에는 신라 애장왕 때 영통화상이 세운 천관사가 있다. 현재는 법당, 칠성각, 요사 등이 남아 있으며, 천관사 3층석탑(보물795호), 석등(전남 유형문화재134호)및 5층 석탑(135호) 등 문화유적들도 몇 가지 존재한다.

▲취재팀은 천관산 주차장을 들머리로 장천재→금강굴→환희대→억새능선→연대봉→정원석→양근암→장천재로 원점 회귀했다. 오름길은 1시간 50분이 소요되고 휴식시간 포함해 총 5시간 정도 소요됐다. 지난 가을 모 방송국 프로그램 1박2일에 등장했던 산으로 출연자 강호동과 김수근이 꼴찌로 올랐던 가장 킨 코스이다.
이 외 등산로는  탑산사를 초입으로 불영봉 닭봉을 통해 오르는 코스는 은지원과 김종민이 올랐던 최단코스이다. 장천재코스 보다는 볼거리는 덜하지만 된비알의 숨가쁨이 장점이다. 모든 길은 연대봉으로 통하고 장천재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가장 일반적이다.
 ▲장천재(長川濟) 가는 길 도화교를 지나면 수령 600년 된 선비 같은 소나무가 기운차게 서 있다.
높이 20m에 달하며 둘레가 3m에 가깝다. 수형은 꼬불꼬불하며 몸뚱아리는 갑옷을 둘렀고 큰 가지 하나가 아래로 흘러 있다. 조선 태종 때 장흥 위씨 제각 장천재를 건립할 당시 천연수로 뿌리내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태고송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태고송이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의 높낮이나 깊이로 기상을 예측했다 한다. 82년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소나무다.
장천재 일대에는 태고송 외에도 수백년이 된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백나무를 보식해 온통 동백림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강렬한 선홍빛 동백꽃잎이 뚝뚝 떨어진 길바닥은 꿈에서 봤음직한 천상의 길처럼 여겨진다.
동백림과 사람주나무, 사스레 덜꿩나무 노각나무의 울창한 숲을 헤치고 30여분 오르면 연대봉 방향으로 쭈뼛쭈뼛 침엽수림같은 바위산이 역광의 실루엣을 보여준다. 뒤돌아보면 옅은 안개 속으로 고흥반도 앞 득량만이 펼쳐진다.

시절은 헷갈려도 진달래 철, 특유의 분홍빛이 산행객을 반긴다. 산 중턱 어딘가에서 뜻밖에 나무가지 끝에 방울방울 맺혀 있는 히어리를 만났다. 지리산 백운산 등지에서만 자생하는 히어리는 희귀나무에 피는 노란 꽃으로 작은 꽃이 여럿 매달려 하나의 큰 꽃 타래를 만든다.
흔하디흔한 진달래 사이에서 피어난 히어리가 반갑게 보이는 건 개체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천연색의 꽃은 사라지고 산은 회색빛으로 변한다. 가끔씩 회색빛 돌틈에 피어난 진달래가 이 삭막함을 지워줄 뿐이다. 적어도 이 회색의 나무들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아 초록의 꿈을 이룰 것이다.
산행 1시간 10분 만에 이 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비교적 전망좋은 공터에서 산 정상을 향해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면  그림 같은 구도가 잡힌다. 하늘과 바위, 천주가 숲을 이룬다.
등산로는 바위산으로 직접 오르지않고 왼쪽으로 우회하면서 올라간다. 옛날 암자가 있었다는 금강굴 앞에서 발길이 머문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굴 안에 웬만한 샘을 능가하는 깨끗한 물이 고여 있는데 신기하기까지 하다. 바위투성인 천관산의 9부 능선쯤 되는 바위틈에 음용이 가능할 정도의 맑은 물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금강굴 위에는 지금도 깨진 기왓장이 널려 있는 암자 터가 있다.
지제지(之提誌)의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때 명승과 도승 가운데 진불(眞佛)에 귀의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천관산에 머물러 사암(寺庵)을 차지했다. 일부는 그것이 여의치 않아 낭떠러지나 토굴 또는 으슥한 곳에 암자를 세웠는데 수가 89개에 이르렀다 전한다. 금강굴도 그중의 하나로 보면 된다.
가파른 구간에는 철다리를 설치해 놓아 오르는데 큰 불편은 없다.
천주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 속으로 꽂아 세운 것 같다는 ‘당번’ 혹은 천주봉을 지나면 사실상 오름길의 끝, 환희대가 희열을 부른다.
환희대는 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서로 겹쳐 있어서 만권의 책이 쌓아진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그것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쉼터이다.
예서 천관산 최고봉 연대봉까지 1km구간은 능선과 평원, 억새가 어우러진 등산로이다. 산불이 많이 났었는지 큰나무는 없고 소나무가 군데군데 있을 뿐 시야가 툭 트인다. 목하 계절은 여름으로 치닫는데 아직까지도 가을 냄새가 풍긴다. 술을 날려버렸어도 줄기가 꽂꽂하게 서 있는 억새군락때문이다.
천관산 최고봉 연대봉 정상에는 봉화대가 설치돼 있다. 이해를 돕자면 TV 1박2일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곳으로 취식권을 의미하는 깃발이 몇개 꽂혀 있던 곳이다.
옛날 이름은 옥정봉이며 고려 의종왕 1160년 봉화대를 설치해 통신수단으로 이용했고 이후부터 봉수봉 또는 연대봉이라 불렀다.
연대봉에 올라서면 천주봉 쪽을 제외한 3면에 바다가 탁 트인다. 해안 바다 섬들이 이어지고 안개속 멀찌감치 달이 좋은 영암 월출산, 철쭉의 고향 제암산, 또 하나의 석주산 무등산까지 보인다. 날씨가 맑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는데 이날은 안개 속에 묻혀 있었다.
하산은 장천재로 회귀하거나 되돌아 환희대까지 갔다가 천주사로 내려갈 수 있고 탑산사로로도 하산할 수 있다.
하산길에서도 특이한 바위이야기는 계속된다. 하산 길 중간쯤에 시루떡을 차곡차곡 쌓은 듯한 일명 정원석이 이국적이고, 남성의 거시기를  닮은 15척(4.5m) 크기의 양근암도 있다. 양근암은 맞은편 금수굴등 코스 중간에 있는 여성을 상징하는 금수굴과 쌍벽을 이룬다.
장천재 앞으로 흘러가는 물소리가 상쾌하고 시원하게 들릴 쯤 천관산 산행이 끝이 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