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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영남포정사 신축 남이흥 장군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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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3  18: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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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영남포정사 신축 남이흥 장군

진주성내 영남포정사 문루를 신축·건립한 공적이 있는 남이흥(南以興)장군께서 순국·순절하신지 390주년이다.
남이흥(1576~1627년)장군의 호는 성은(城隱)이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02년 27세 때 알성문과하여 현감, 부사, 목사를 거쳐 중군장군으로 근무 중 1624년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적이 있다. 이 공적으로 진무1등 공신, 종 1품에 영전되었고 의춘군에 봉하여 졌다.

1627년 인조5년 부원수 겸 평안병사로 재임 중 청국(후금)의 3만 6000여명이 쳐들어 올 때 안주성에서 3000여명으로 대항하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수성이 불가했다. 안주성 안으로 적을 유인해 화약고에 점화하여 많은 적군들과 함께 순절했다.

인조임금은 전사소식을 듣고 국상으로 예장토록 하고 임금이 친히 입었던 왕의 곤용포(어의)을 관에 덮어 주었고 조정에서는 정1품 벼슬과 의춘부원군과 좌의정을 증직케 했다.

충장공 시호와 아들, 손자들을 불러 수령직을 임명했다. 충남 당진군에서는 남이흥 문화제를 해마다 29회 개최해 공을 기리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남이흥 이름이 264회 기재되었는데 조선 개국공신 남재 영의정이 8대조가 되고 이어 고종 때 까지 자자손손 벼슬을 주었다.

남이흥 장군이 신축·건립한 영남포정사는 문화재 가운데 가장 낮은 문화재자료 3호에 불과한데 400년 건조물이 문화재 자료 즉 안동 고택의 화장실보다 낮은 등급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영남포정사는 경상남도 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다. 일명 망미루 이다.

광해군 10년 1618년 병사 남이흥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집무청인 관덕정내 동문으로 세워졌고 그 이후 경상우병영의 관문으로 애용되었다.

고종 32년 1895년에 팔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제로 시행함에 따라 진주부가 설치되니 진주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고 다음해인 건양 원년 1896년에는 다시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남도로 개정되자 경상남도 관찰사의 선화당 관문이 되어 영남포정사라 호칭하고 현판도 달아 지금까지 이어진다.

1924년 4월 경남도청이 부산부로 옮기기까지 영남포정사 문루였다.

정문에 하마비(下馬碑:전국의 하마비가 문화재 5곳 지정됨)가 세워져 현존한다. 내년 2018년이 신축·건립된지 400주년이지만 전국 건조물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은 오직 영남포정사 뿐이다. 이상한 등급의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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