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큰 도둑·작은 도둑
칼럼-큰 도둑·작은 도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9.18 18:3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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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큰 도둑·작은 도둑


마포는 가까운 곳에 강이 있어 뱀과 벌레가 많다. 내가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니, 하인이 큰 뱀 두 마리를 잡았다가 곧 놓아주며, 작은 뱀 두 마리는 잡아서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연유를 물었더니 하인이 이렇게 말했다. “큰 뱀은 영(靈)이 있어서 죽일 수 없지요. 죽이면 사람에게 앙갚음을 해요. 작은 뱀은 죽이더라도 사람에게 앙갚음을 못하지요” 뱀은 사악(邪惡)한 짐승이다. 큰 뱀은 사악함도 큰 반면, 작은 뱀은 사악함이 작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큰 것은 사악함이 커서 죽임을 면하고 작은 것은 도리어 사악함이 작은 연유로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일이 어찌 짐승에게만 해당하랴?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게 사악한 자는 그 악이 너무 크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사악함이 작은 자가 도리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선행의 경우는 반대라서 크게 선한 자는 소문이 나지 않고 작게 선한 자는 소문이 난다. 마찬가지로 크게 충성스러운 자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작게 충성스러운 자가 보상을 받으며, 큰 현자(賢者)는 기용되지 못하고 작은 현자는 기용된다. 선과 악, 크고 작은 것의 행불행이 아니겠는가? 몇 마디 덧붙인다면 살인을 많이 한 도척(盜跖)은 멸하지 않고, 담을 넘은 좀도둑은 몸이 찢긴다. 살인자는 버려두고, 베 두 필 훔친 자는 죽인다. 큰 아전(衙前)이 소리 질러 공갈하면 미천한 백성들은 땅바닥에 뒹군다. 또 덧붙여 말한다. 공자(孔子)와 묵자(墨子)는 조정에 올라가지 못하고 보잘것없는 유생(儒生)은 성고하며, 예장나무는 버려두고 익나무가 대들보가 된다. 이제 백성들 가운데 어떤 자를 포상하고 어떤 자를 징계할 것인가? 이른바 큰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이른바 생계형 좀도둑은 큰 벌을 받는다. 가치와 질서가 전도된 세상, 이상과 현실은 너무도 괴리(乖離)가 크다.

위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심익운(沈翼雲:1734∼1783)이 쓴 ‘백일집(百一集)’〈잡설사칙(雜說四則)〉에 나오는 내용이다.

크고 작은 뱀의 경우를 들어 인간 세상의 비정한 진실을 비판한 그는 일찍이 장원급제하여 출세하고 또한 조정 안팎에서 문명(文名)을 떨쳤지만 정조가 왕세손일 때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글을 올린 일로 정조 즉위 후 처형당한 형 심상운의 반역죄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흑산도와 제주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맞은 비운의 문사였다. 정조 시대 문치를 빛낸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서얼 출신 관료 중의 한 사람인 성대중(成大中:1732∼1809)이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심익운의 재주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운을 불쌍하게 여겼다’는 증언을 남길 만큼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다고 한다.

을사오적은 1905년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매국노 학부대신 이완용(1858∼1926‧47세), 군부대신 이근택(1865∼1919‧40세), 내부대신 이지용(1870∼1928‧35세), 외부대신 박제순(1858∼1916‧47세), 농상공부대신 권중현(1854∼1934‧51세)의 다섯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역사가 심판하는 나라를 팔아먹은 큰 도둑이다. 그런데 이들 중 네 사람은 50을 넘기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면서 크고도 큰 도둑으로 이름을 남겼으니 얼마나 허무한 삶이었던가? 또한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인 김지하(1941∼) 시인은 1970년 5월호 ‘사상계’에 실은 〈오적(五賊)〉이란 시에서 재벌 ‧ 국회의원 ‧ 고급공무원 ‧ 장성 ‧ 장차관 다섯을 나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빗대 ‘오적(五賊)’이라 정의 했다. 소설가 김홍신은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을 ‘도독놈과 도둑님’이라고 했다. 누가 도둑놈이고 누가 도둑님일까? 추리가 가능한 제목이다. 우리가 익히 알 듯 조선의 국조 이성계는 고려의 큰 도둑이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세 번이나 도둑질을 하였다. 첫째는 자신을 믿고 군대를 내준 우왕과 최영을 배신하고 창을 거꾸로 돌려 섬기던 왕을 내쫓고 자신을 믿어준 상관을 죽인 일이고, 둘째는 창왕을 내쫓고 공양왕을 세운 일이며, 셋째는 자신이 세운 공양왕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한 일이다. 이렇듯 이성계는 세 번의 도둑질을 통해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해 왕조의 국조가 되었다. 반역에 성공한 역적은 역적이 아니라 혁명가라고 한다고 했던가?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 되지만 만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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