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2.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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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옥/작가ㆍ약사
명색이 글쟁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글과는 상관없이 잘 살아온 사람이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글을 써야 하거나 글을 쓰고 싶은 순간과 맞닥뜨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기는 동창회 회보에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는다거나 절실한 느낌을 글로 표현해 보고픈 욕구가 인다거나 누군가를 글로라도 설득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도 할 터. 그럴 때 난감하고 막연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를 내게 묻곤 하는 것이다.

이름 석 자를 걸고 ‘수필교실’을 연재하기도 했지만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글쓰기가 어렵기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마감의 중압감까지 있으니 그 고통이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감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새 달이 시작돼 담당기자가 오피니언 제작계획표를 메일로 보내오면 그날로부터 지옥이 따로 없다. 마감, 마감. 머릿속은 온통 이 두 글자로 가득하고, 최종 작업을 끝내고 송고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잠시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무책임한 말 같지만 답은 없다. 자잘한 기술이나 지름길은 내가 보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는, 판에 박힌 그러나 진실인 옛 현인의 말씀 말고는 해줄 말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인다면 글은 엄중하다는 것, 글을 두고 절대로 경솔하게 오만하게 굴면 안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라고 말하고 싶다.

대통령을 하얀 국물의 라면에 빗대어 마음껏 농락(?)하기도 하는 게 요즘 세태지만 나는 글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공적 지위에 있는 공인으로서가 아닌 사적인 영역의 자유라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천박한 희화와 질 낮은 은유에 판사들까지 동참하는 것을 두고, 표현의 자유니 무책임한 행동이니 어떤 잣대를 대기에 앞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글과 말이 차고 넘치며, 쓰레기 같은 책들로 이미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쓰레기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다. 지구 환경과 다음 세대의 건강을 위해서도.

실은 내 과오(?)를 고백하고 바로잡기 위해 이리 에둘렀다. 지난 달 내 칼럼을 읽으신 지인 한 분이 뼈아픈 충고를 해주셨다. 그분의 지적은 정확했다. 내가 잘못했다.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인 해를 뜨지 않았다고 우긴 바닷가의 그 누군가처럼 빤한 거짓말로 가뜩이나 지친 사람들을 현혹하고 선동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바닷가의 그 누군가’는 오늘은 해가 뜨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날이 궂어 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던 것임을 나는 물론 잘 알고 있다.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선동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동사를 잘못 쓴 것뿐이다. ‘안 보인다’ 대신 ‘안 뜬다’를 쓴 실수. 아니 실수랄 것도 없다. 그게 잘못이라면, 문 닫고 들어오라든가 머리 깎고 오라든가 하는 관습적인 표현이나 부주의함도 일일이 시비 걸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을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는 정치꾼들에까지 빗댔으니 대단한 오류고 엄밀히 따지면 견강부회다. 물론 나 역시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곡해하려던 것이 아님을 그분은 잘 알지만 경솔하게 글을 쓰지 말라는 경고를 주신 것이다. 글쓴이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해줄 수 없는 충고이기도 하였다.
바닷가의 누군가는 해가 안 보일 테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선의를 가지고 있었고 ‘안 뜬다’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사람들이 오해할 일은 없지만, 선동가들은 거짓말이나 모호함이나 과장 같은 갖가지 기법을 사용해 악의적으로 진실을 호도한다.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 자가 정말로 달을 가리키는지 실은 제 손가락의 반지를 보이기 위함인지 가려내고 꾸짖을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을 가져야 한다. 유구무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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