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내 인생에 용기가 되는 사람
세상사는 이야기-내 인생에 용기가 되는 사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9.20 18: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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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내 인생에 용기가 되는 사람


가을의 전령인 코스모스 군단이 한들거리며 도로 양 옆에 도열해 있다. 간혹 보이는 나팔꽃 무리는 행진곡을 연주하는 군악대 같다. 하늘에는 고추잠자리들이 축하비행을 하듯 평화롭게 날고 있다.

필자가 탄 차량은 마치 장군이 부대 사열(査閱)을 하듯이 천천히 꽃길을 지나간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 분홍·자주·하얀 빛깔의 천연 향기가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들판에는 잘 익은 곡식이 겸손한 모양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밤송이는 여름 내내 애지중지 품고 있던 토실토실한 알밤을 온 몸을 열어서 내어주고 있다. 지난 일요일, 대전에서 군 복무중인 아들 면회를 가는 국도변 풍경이다.

아들은 올해 7월말에 입대해서 논산 훈련소를 퇴소하고 육군군수종합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다가오는 목요일에는 강원도 인제군 최전방 동부전선을 지키는 육군 을지 부대로 배치 될 예정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이다.

거창에서 부대까지는 약 2시간 30여분이 소요됐다. 어떤 모습일까, 최전방 부대 배치 소식에 온갖 걱정을 하면서 달려왔다. 민원실에서 간단한 신원 확인절차를 마치고 군 소식지를 보며 기다렸다.

잠시 후에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오는 젊은 군인의 모습이 보였다. 훈련소에 있을 때 보다 더 듬직하게 보여서 일순간 걱정이 사라졌다. 힘껏 안아줬더니 멋쩍은 미소로 ‘안녕하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부대에서 멀지 않으면서 면회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음식점으로 출발했다.

대전 시내로 진입하자 아들이 잠시 다녀 올 때가 있다며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뛰어서 돌아온 녀석이 차를 타면서 ‘월급 모은 돈’이라며 10만원을 필자에게 건네줬다.

얼떨결에 군인 아들의 첫 월급을 받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감동에 목이 메여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 두 동생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8삭둥이로 태어나 2개월 동안 대학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어릴 때는 잦은 감기와 허약한 체질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넉넉하게 용돈을 쥐어주거나 가지고 싶어 하던 물건을 사준 기억이 별로 없다. 올해 대학에 입학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충당하다가 자원입대했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더 미안하고 대견스러웠다.

맛있는 뷔페 음식을 먹으면서 부자간의 정(情)이 묻어나는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점식 식사 경매가가 30억원에 낙찰됐다는 세계 갑부 중 한명인 미국의 투자 귀재 워런 버핏 회장도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커피숍을 찾아 걸어가는데 서점 간판이 포착됐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두 권의 책을 골라서 계산대로 갔더니 어느새 아들이 필자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제대하는 날 서울에서 아빠가 쓴 글이 나온 신문을 읽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며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책 선물을 했다.

그냥 웃고 말았지만 기분 좋은 명령이요, 용기를 주는 한마디였다.

헤어져야 할 시간, 걱정 말라며 씩씩하게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부모의 마음은 다 그런가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코스모스가 반겨주고 있었다.

국가를 위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미래의 꽃길을 걷기위한 인내의 시간이 될 것이다.
모든 젊은 청춘들의 무사 군복무를 기원 한다.

늦은 밤, 아들이 사준 책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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