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도산(陶山)9곡(九曲)의 연원
진주성-도산(陶山)9곡(九曲)의 연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9.26 18:3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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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도산(陶山)9곡(九曲)의 연원


이퇴계가 조선 중종때 지은 것으로 그가 경북 안동 도산서당을 세우고 제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며 사물을 대함에 일어나는 심회(心懷)와 학문(學問)과 수양(修養)의 심경(心境)을 읊은 것이다. 이별의 육가(六歌)를 본받아 전자를 언지(言志) 후자를 언학(言學)이라고 한다. 경치 좋은 계곡의 구간을 9단계로 나누어 이를 주곡이라 이름을 붙이고 선비정신을 함양하는 과정으로 생각하였다. 낙동강 상류의 50리정도를 도산구곡이라 한다.

청량산에서 외내 군자리 까지의 구간이다. 10리 정도 사람이 살지않는 계곡으로 도산구곡은 50여리의 큰 구간으로 구간마다 명촌(名村)들이 세거해왔다는점이 독특하다. 퇴계선생의 제자와 후손들이 거의 5백년 세월동안 도산구곡에 살아왔다. 제1곡은 운암곡(雲巖曲)이다. 광산 김씨들이 대대로 살았다. 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가 회자된다. 7군자중 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1516-1577)이 유명하다. 그곡은 월천곡(月川曲)이다. 횡성 조씨들이 살았다.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이 대표적 인물이다. 3곡은 오담곡(鰲潭曲)이다. 단양 우씨들이 세거(世居)하였다.

퇴계가 존경하던 역동(易東) 우탁(禹倬1263-1342)선생의 서원이 있고 성리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안향(1243-1306)의 제자로 경사에 통달하고 역학에 조예가 깊으며 우탁은 퇴계 이황이 백세(百世)의 스승으로 높여 부른다. 제4곡은 분천곡(汾川曲)인데, 강호가도(江湖歌道)라고 하는 영남 풍류의 창시자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를 전후하여 영천 이씨들의 600년 세거(世居)지로 장수(長壽)집안이며 적선(積善)을 많이 하는 집안으로 유명하다. 5곡은 도산서원과 퇴계 후손들이 사는 의인(宜仁)·섬촌(剡村), 하계(下溪)와 계남(溪南) 일대이다. 6곡은 천사곡(川沙曲)이다. 진성 이씨들의 원촌(遠村)과 천사(川沙) 마을이다. 원촌은 저항 시인 이육사(李陸史1904-1944)의 고향이다. 1933년에 “황혼”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 일제 강점기때 저항시인으로 민족정신을 노래했다. 대표작으로 파초(1941), 광야(1945) 문장에 발표된 시 청포도가 유명하다. 역사적 운명을 같이한 민족 공동체의 선물이기도 하고 꿈꾸는 이상이기도 하다. 7곡은 단사곡(丹砂曲)이다. 천석을 사랑한 이극철이 살던 곳이다. 8곡은 고산곡(孤山曲)이다. 봉화 금씨 성재 금난수(1530~1604)의 바위절벽 밑에 있는 고산정(孤山亭)을 보고 감동을 받을 정도다. 현재는 농암 종택이 8곡으로 옮겨져 있다. 9곡은 청량곡(淸凉曲)이다. 청량산인을 자처하던 퇴계의 수도처이다. 도산구곡 일대는 500년 동안 세월의 풍파로 거의 풍광이 변치 않고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도산구곡 골짜기마다 쏟아부어 놓은 먹물은 세월에 지울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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