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영화 “남한산성”
칼럼-영화 “남한산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0.11 18: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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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

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영화 “남한산성”



지금으로부터 381년 전이며 임진란이 끝난 후 39년 만에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쳐들어왔다.

여진이 해전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강화도로 인조가 피난 가고자 하였으나 피난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47일간의 어둡고 추운 역사를 다룬 영화가 남한산성이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하여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기까지 조정과 백성, 군사와 대신 등의 사정, 그들의 입장과 처지가 어떠하였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줄곧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치욕을 참고 항복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과 치욕을 견디고 사느니 끝까지 항전하여 죽음을 택하자는 척화파인 김상헌의 갈등, 그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조의 심정을 다룬다.

이 영화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길을 찾아야하는 지금의 시대상황과 너무도 닮아있기에 관중 흡입력에서 다른 영화와 사뭇 다르다.

아다시피 인조는 반정을 통하여 광해군을 내치고 왕이 되었다. 광해군은 무력한 선조를 대신하여 임난때 나라를 구한 국제 감각을 터득한 군주였으나 인조등장이후 그의 외교술은 헌신처럼 버려졌고 나라는 위험에 빠진 것이다. 영화는 두시간 이상 관람객의 눈을 잡아당겼다.

초반에 강나루에서 노인이 감상헌의 칼에 죽는 장면과 청과의 초반전투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장면, 대장장이 날쇠가 죽음을 무릅쓰고 격서를 전달하는 장면 등이 그러하였다.

수많은 대사들 중에 가장 가슴을 친 말은 다름 아닌 위험에 빠진 남한산성을 구하러 오라는 근왕병에게 인조가 보낸 격서를 전달한 날쇠가 오히려 그들에게 죽음직전에 빠지자 “나는 벼슬아치는 믿지 않는다”였다.

정치인과 백성 사이의 골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였다.

임난이 끝난지 40년이 훨씬 지났건만 조정에서는 권력자 자기들의 권력다툼과 배채움에 빠져 과거의 치욕과 고난에 대한 대비는 없었다.

한마디로 쓸개가 빠진 정치인들이었다. 여전히 민초들은 세금수탈과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시달렸고 초근목피로 삶을 이어간 것이었다.

40년 동안 허송세월만 하다 큰일 닥치면 명에 또 기대면 되지하는 나약한 정신으로 지내다 여진이 쳐들어오자 살고자 하는 급박함에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것이었으나 혹한과 군비부족으로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여진의 칸인 누루하치에게 땅바닥에서 남색 옷을 입고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스런 항복조인식을 하게 된다.

영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조정에서는 이미 명나라가 국력이 약해져서 청나라에게 대포 홍이포를 빼앗길 정도로 약해졌음에도 부모의 나라 명을 배신할 수가 없다는 명분론에 빠졌고 산성에서 적과 마주보는 상황에서도 인조의 곁을 지키는 군사들의 추위대비용 거적지급건을 가지고 필요없이 격론을 주고받는 장면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고 격서를 전달받은 근왕병이 파발을 죽이려는 시도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중심과 정신을 잃은 임금, 쓸개 빠진 대신들과, 그 속에서 죽어가는 민초들의 고단한 일상이 영화전반에 드리워진다.

이 영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무엇인가, 몇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무엇보다 나라는 힘이 있어야 한다. 국방력이 강해야 한다. 국방이 약하면 다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현명한 군주와 지혜로운 신하가 필요하다. 지금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이며 이들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우리수준만큼 우리 그릇만큼의 사람들이 선택되고 그들이 또한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선택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

또 하나 사람이 사람 속에서 사람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영화중반부 새해를 맞아 최명길은 조선조정에서 여진족 수장인 칸이 정말로 도착했는지 염탐할 겸 용골대에게 세찬을 주러 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이때 영상 김류가 또 최명길은 믿을 수가 없다며 인조와 조정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험담을 퍼붓는다. 인조가 그럼 김류도 같이 가서 청군 진영을 살펴보고 오라고 명한다.

김류와 최명길은 청의 앞잡이 역관 정명수와 함께 청 진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랑 명에서 획득한 홍이포를 보게 된다. 김류는 정명수를 보며 당신도 조선 사람 아니었느냐 하며 어찌 청군 편을 드냐고 묻지만 정명수는 자신은 노비로 태어났고 조선의 노비는 사람이 아니라며 다시는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하지 말라고 눈을 부라린다. 이윽고 사신 단은 용골대를 만나 세찬을 바치지만 용골대는 “우리는 조선 8도를 모두 가졌으니, 8도의 술과 고기는 모두 우리 것이다. 우린 잘 먹고 있으니 굶주린 너희 왕과 신하들이나 먹여라” 라며 가져간 세찬을 돌려보낸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대우하지 않았던 결과는 결국 자기자신도 그런 사람아닌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해야 자기자신이 사람대접을 받을 것인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최명길이도 김상헌이도 다 나라를 생각한 훌륭한 사람이다. 다만 평가에 앞서 그들은 비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김상헌이처럼 항복하지 않았다면 남한산성에서 군주를 포함 몰살을 당하는 상황까지 갈수 있었고 최명길처럼 미리 항복을 했다면 47일간의 항전역사는 쓰여 질수가 없었다.

1636년 1월 3일부터 2월 24일간을 버티다 결국 우리는 항복을 하였다. 완전히 망한 것이다. 병사는 3만명 이상이 죽었고 죄 없는 민초들은 50만명 이상이나 끌려갔다.

항복조건은 다음과 같다. 조선은 청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행할 것. 조선은 명의 연호를 폐지하고 명과 교통을 끊고 명에서 받은 고명과 책인을 헌납할 것. 조선은 왕의 장자와 제2자 그리고 대신의 자녀를 인질로 보낼 것. 청이 명을 정벌할 때는 기일을 어기지 않고 원군을 파견할 것. 내외 여러 신하와 혼인하고 사호를 굳게 할 것. 성곽의 증축과 수리는 사전에 허락을 얻을 것. 황금 100냥, 백은 1000냥을 비롯한 물품 20여 종을 세폐로 바칠 것. 성절·정삭·동지·경조 등 사신은 명 구례를 따를 것. 가도를 공격할 때는 병선 50척을 보낼 것 등이다.

돌이켜보면 조선 500년은 시작때부터 문제가 많았다. 숭유억불은 종교를 편향시하고 국민정신을 두 조각내었으며 사대교린으로 강대국에 의존하는 비겁자를 키웠으며 농사만을 중시하여 상업이나 과학을 등한시하고 천시한 것이 태생적 문제였고 이는 결국 나라를 망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고난의 역사가 많은 만큼 극복의 수단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영화가 자주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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