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모 어떤 친구입니까
어떤 부모 어떤 친구입니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2.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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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1년 전에 산 산에서 일을 하다가 10돈 짜리 금팔찌를 주웠다면 당신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전 주인에게 돌려준다? 아니면, 내가 내 돈 주고 산 땅에서 내가 주운 것이니 아무에게도 아무 말 않고 그냥 내 팔에 찬다? 그게 약간 마음에 걸리면 전 주인에게 말하고 팔아서 그 돈을 반반 가른다? 

금값이 예전처럼 1돈에 5만원만 한다 해도 50만 원 정도니까 그리 큰 갈등 없이 이전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금값이 금값이니만큼 3년간 흙에 좀 묻혔었기로 못해도 200만 원은 족히 넘는 금액이다. 그러니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딱 보는 순간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남편이 일용직에 아들이 셋인데다 더욱이 손을 댄 주식이 반 토막에서 또 반 토막이 더 난 처지라 집을 짓기 위해 신청했던 융자금을 다시 반납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러나 내 친구는 오늘 이 팔찌를 이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바보라 할 이도 많겠지만. 그는 이미 열흘 전에 “언니, 산에서 일하다 팔찌를 주웠는데 전주인(前主人) 할머니에게 연락을 했는데 통화가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그 집 형편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러면 그건 그냥 네가 하라는 뜻이다’라고 바로 말 할 뻔 했다. 그런데 나도 놀란 것이 내 입에서 “역시 내가 사람은 잘 봤네! 내일 갈 때 내가 같이 가줄까”라는 말이 새나오고 있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수차례 전화를 넣어도 할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다가 오늘 오후에사 통화가 되었다며 그는 나를 태우러 우리집으로  왔다. 우리는 곧장 그 집으로 갔다. 앞집에 신축한 집에 가려서 초행이라면 아마 그 집을 찾지도 못하고 되돌아올 정도로 푹 꺼진 오두막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폐암이어서 병원에 입원해 간호하던 중인데 반찬을 좀 해가러 들렀다며 바로 진주 넘어 갈 참이었지만 고구마(안방에 이불로 덮어놓은 세 상자를 가리키면서) 얼지 말라고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노인은 “아이고! 참 좋고 반가운 사람이 왔다!” 라며 반색을 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먼저 덥석 잡으시며 “참으로 반갑소이-! 나 이 사람을 잘 아는데, 어찌 그리 착하고 마음씨가 좋은지… ”라며 옆에 함께 섰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나를 칭찬 하셨다.  정작 당신의 팔찌를 주워서 가져간 사람에게는 “고맙소” 이 정도로 그치고. 그래도 나는 그 어른을 얼른 못 알아 봤다. 그래서 그 팔찌를 건널 때 “할머니, 팔찌 주운 사람은 저가 아니고 이 사람입니다”고 확실하게 각인 시켜드렸다.

그랬음에도 방안에서는 물론 대문에서까지 노인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셨다. 장날 시장에 나오면 노점에 있는 여러 사람들한테 골고루 사주면서 한 번도 그 값을 깎자 소리 안 하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라서 그렇다며. -난, 그저 대형마트에서는 몇 십만 원을 일시불로 척척 계산하면서 10원도 못 깎는 이들이 왜 이 엄동설한에 좌판을 편 노인들에게는 그리 매정스럽게 가격들을 후려쳐대는지 그 심사가 이해가 안 가 부르는 대로 주고 물건들을 샀을 뿐인데.       

아무 것도 대접할 게 없다며 난처해하는 노인에게 부뚜막에 걸린 커피믹스 한 봉지에다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물만 한 잔씩 부어달라고 해서 얻어 마셨다. 칠순의 환자를 병실에 두고 온 그 절박함이 표정에서 역력히 묻어나 방바닥 자리가 까뭇까뭇 눌어붙은 따끈따끈한 안방 아랫목을 뒤로 하고 아쉽지만 곧장 일어섰다. 오늘따라 내가 지갑도 없이 휴대폰만 딸랑 들고 나섰던 터라 친구는 주운 이 팔찌를 되돌려주면서 5200원의 빵 값에다 2600원의 주차요금까지 자기 돈을 더 지불해야 했다. 

이는 탈무드나 동화책에 나오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8일 하동군 하동읍 부연동에서 이지하와 이양임 노인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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