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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오월동주(同舟)와 와신상담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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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4  19: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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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오월동주(同舟)와 와신상담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와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항상 적의를 품고 싸웠다는 옛일에서 서로 사이가 나쁜 자들이 같은 처지나 한자리에 있게 된 경우를 이르는 말로 사이가 나쁜 처지라 할지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협력한다는 뜻이다.

고사성어로 잘 알려진 두나라는 원래 초나라의 동맹국으로 나쁘지 않은 사이지만 힘이 세진 오나라가 초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면서 월나라가 초나라 편을 들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멀어져 월나라에 쳐들어가 전쟁 중 월나라 왕 구천에게 패하여 죽자 합려의 아들 부차는 월나라가 한짓을 절대 잊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섶(장작)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할 것을 다짐. 섶위에서 잔다는 뜻의 와신(臥薪)이다.

월나라 왕 구천은 눈에 가시였던 오나라를 공격 했다가 오히려 부차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다. 구천은 오나라에 뇌물을 바치고 미인을 보내며 화의를 청했으나 자신은 3년동안 오나라왕 부차의 곁에서 시중을 들며 치욕의 삶을 살았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3년간의 치욕을 잊지 않으려고 밥상머리에 곰의 쓸개를 달아놓고 이를 핥아 쓴맛을 보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쓰디쓴 쓸개를 핥는다는 뜻의 상담(嘗膽)이란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원수를 갚으려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의 고사성서 와신상담의 주인공이 바로 부차와 구천이다. 월나라로 돌아온 뒤 물자를 모으고 인재를 양성하며 국력을 키우는 한편 오나라에게는 갖은 이간책과 미인계를 쓰며 국력을 낭비하게 하였다.

드디어 구천 재위 15년인 기원전 482년 구천은 부차가 다른 나라 제후들과 모여 회의하는 틈을 타 오나라 수도를 공격. 부차는 귀국하여 원나라에 대항 했지만 힘 부족으로 구천은 부차를 수세에 몰아넣고 일단 물러났고 기력을 잃은 부차는 월나라로 사신을 보내 화의를 청했으나 구천은 거절했고 끝내 오나라는 멸망. 이 과정에서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써 오나라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구천은 북방지역까지 공략하여 다른 제후들까지 규합. 주나라 왕실에 조공을 바치며 패주의 지위를 인정 받아 이로써 구천은 춘추시대 최후의 패주가 되고 공신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 숙청. 여기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원나라 왕 구천에게는 범려라는 책사와 문종이라는 신하가 있어 구천은 충신 범려의 만류에서 오나라를 공격.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마침내 구천이 오랜세월 상담을 끝내고 오나라를 평정해 패왕(覇王)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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