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을 그리고 할머니들
진주성-가을 그리고 할머니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0.26 19:0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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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을 그리고 할머니들


아침저녁이 서늘해졌다. 들녘은 온통 황금빛이다. 먼 산의 빛깔도 단풍으로 물드나 보다. 초록의 일색이던 산야는 가을빛으로 물들어 간다. 참깨 들깨도 익어서 시골마을의 할머니들이 바빠졌다. 깨를 털고 콩 타작도 해야 한다. 벼농사야 남을 준지가 오래이지만 텃밭이나 자투리땅을 놀리지 못하고 할머니들은 철 따라서 씨 뿌리고 가꾸었다.

외지로 떠난 자녀들은 제발 일손을 놓으시고 건강관리나 하라지만 할머니들은 대답뿐이지 그러지를 못한다. 안 그래도 적적한데 놀면 뭐 할 거냐고 속으로만 반문하고 내뱉지는 않는다. 몸에 배인 일손이라 온 몸이 스멀거려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노랗게 움터서 파릇파릇 자라는 모습이 눈에 선하여 그냥 두지를 못한다. 하룻밤만 자고나도 눈에 다르게 부쩍부쩍 커가는 모습이 어른거려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몸서리치게 볶아대는 뙤약볕 아래서 시들시들 비틀어지다가도 물 한번 주고 나면 쌩글쌩글 되살아나는 모습이 당차고 고마워서 다리 허리 아파도 한번 걸음 더 한다. 장마 지고 태풍 온다면 쓰러질까 염려되어 물고랑도 틔워놓고 막대기 꽂아서 얼기설기 줄을 치고 하늘하고 타협한다. 엊그제께 꽃피더니 어느새 열매 달아 제몫을 다하는 성실함이 고마워서 풀 한포기 범접할까 가다가도 돌아본다. 철가는 줄 몰랐는데 하루하루 영글면서 튼실하게 익어 가면 날만 새면 둘러본다. 알곡을 거둘 때면 알알이 옹골차서 흐뭇하여 즐겁고 과실을 딸라치면 비바람을 견뎌내고 뙤약볕도 이겨내며 튼실하게 여물어준 대견함이 고마워서 흡족하여 신이 난다. 언덕배기 오르면서 미끄럼도 무릅쓰고 틈틈이 꺾어 와서 데쳐 말린 고사리도 봉지봉지 넣어두고 빛깔고운 마른고추 비닐부대 한 가득씩 꼭지 따서 넣어놓고 깨 털고 콩 타작하며 멧돼지의 주둥이인양 두들겨 치다가도 미운마음 한때여서 내만 살면 되겠냐며 산짐승도 용서하고 산새와도 화합하고 들새와도 화해한다. 며느리는 언제 올까 딸 식구는 언제 올까 벽에 붙은 달력으로 짬도 없이 눈이 가는 시골마을 할머니는 봉지봉지 싸주려고 씨 뿌리며 즐거웠고 가꾸면서 신이 났고 거두면서 행복했다.

아직은 마당 한쪽에 허름한 유모차가 할머니의 외출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섰건만 머잖은 훗날에 마을회관 앞마당의 유모차도 하나 둘씩 사라지면 가을이 남겨 줄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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