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글쓰기’의 나비효과
세상사는 이야기-‘글쓰기’의 나비효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1.01 18: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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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글쓰기’의 나비효과



‘잊혀진 계절’, 10월의 마지막 밤이 지났다. 11월의 첫날, 우체국 앞에는 바람에 떨어진 은행잎들이 가을 아침 출근길을 노랗게 물들였다.

해마다 단풍이 짙어가던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2006년 11월 말, 조용한 시골 산골 마을에서 노부부가 사라졌다.

휴일 날, 모처럼 아이들과 집에서 쉬고 있는데 ‘비상이 걸렸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경찰·소방·지역주민 등 많은 인력과 헬기까지 동원했지만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에서는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수사 인력을 대폭 보강한 수사본부를 발 빠르게 설치했다.

눈 내리고 찬바람 부는 현장을 숱하게 오가면서 용의자를 추적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렵게 검거한 용의자는 처음부터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살인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사체나 범행도구를 찾은 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뚜렷한 증거나 목격자도 없었다. 답보 상태에 빠진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고, ‘살인의 추억’이라는 비관론이 대두됐다.

철옹성(鐵甕城) 같이 굳게 닫힌 용의자의 심리적 장벽을 허문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면담기법’이었다. 선입견과 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고 경청과 진심이 묻어나는 이해와 설득이 결국 입을 열게 했다.

사건 발생 20여일 만에 국도변 맨홀에 유기했던 사체를 찾고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부끄러운 실력인줄 알면서도 용기를 내서 사건 해결 과정과 생각을 담은 글을 경찰 내부망에 올렸다.

필자의 보고서를 읽은 경찰수사연수원 수사학과 교수가 전화로 강의 요청을 해왔다. “시골 형사가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며 당황스럽고 난감해서 단박에 거절했다. 계속된 요청에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건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경찰관을 비롯한 국방부, 철도청 등 수사 업무와 관련된 전문가들 앞에서 떨리는 첫 강의를 했다.

전국 각지의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고 소통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최근에 각종 글쓰기 강좌를 비롯해서 글쓰기 관련 책이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예스24의 글쓰기 책 판매량은 2015년 10만 9110권에서 지난해 14만 5051권으로 32.9% 증가했고, 올해 7월 24까지 7만 7069권이 판매돼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을 넘어섰다’는 기사가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필자도 대통령 연설 비서관 출신 강원국 작가의 ‘대통령의 글쓰기’, 박종인 작가의 ‘기자의 글쓰기’, 임정섭 작가의 ‘글쓰기 훈련소’등 관련 책을 꾸준히 사서 공부하고 있다.

직장인에게 글쓰기는 경쟁력이자 직장생활 평가의 척도가 된다.

현황과 문제의 핵심을 요약하고 향후 대책까지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보고서 단 한 장만으로도 상사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하버드대학의 글쓰기 프로그램을 20년간 진행한 소머스 교수는 “자기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뿐만 아니라, 취업 준비와 직장 생활 등 그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진솔하게 쓴 글이 좋은 글이다. ‘읽는 것이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남의 글을 많이 읽고, 필사로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퓰리처상’을 만든 미국 조지프 퓰리처의 명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짧게 써라, 그래야 사람들이 읽을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래야 사람들이 이해할 것이다. 그림 그리듯 써라, 그래야 사람들이 기억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확하게 써라, 그래야 사람들이 그 빛에 이끌릴 것이다”

그때 그 부족한 글이 필자를 ‘동료 강사’, ‘우수 지식인’, ‘경남도민신문 칼럼리스트’, ‘거창군립 한마음 도서관 자문위원’으로 만들어줬다.

강의와 신문·잡지 등 글을 수단으로 해서 삶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글쓰기’의 ‘나비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생각도 좋고 예쁜 단풍, 꽃구경 이야기도 좋다.

짧아도 좋다, 시작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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