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의학적 철학, 의학적 정치
아침을열며-의학적 철학, 의학적 정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1.02 18: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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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의학적 철학, 의학적 정치


대학원시절 함께 공부했던 한 후배가 자신의 학문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견하다. 공자가 ‘후생가외’라 했던 말을 그에게서 확인한다.

현대 독일철학의 큰 성과 중 하나였던 이른바 ‘현상학’을 우리는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지겹도록 공부했는데,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현상학을, 그는 후설의 인식론적 현상학을 주전공으로 삼았다. 데카르트-칸트의 계보를 잇고 있는 후설의 현상학은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을 통해 본직직관을 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려는 철학인데 이른바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지향하는 것이라 치밀하기가 짝이 없어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재미없는’ 철학을 그는 뜻밖에 의학과 연결시켜 현실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모양새다. 이른바 ‘의료현상학’ ‘케어의 현상학’이라는 깃발을 든 것이다. 이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분야인 것이다. 인품도 있는 그인지라 나는 그의 완전한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학이라는 것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병 즉 아픔을 고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학은 기본적으로 발병-진단-처방 및 처지-치료라는 단순명쾌한 구조를 갖고 있다. 더 간추려서 말하자면 문제의 발생->문제의 해결이라는 구조다. 그래서 나는 40년 전 대학생 때부터 이 구조를 내가 전공하는 철학에 접목시키고 싶었다. 철학에도 실은 이런 내적 구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의학은 사람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철학은 사람의 정신을 그리고 사회 내지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그 정신-사회-세계라는 것에도 신체의 ‘병’에 해당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문제란 그 본질상 그것의 해결을 요구한다. 그래서 진단과 처방/처치가 필요한 것이다. 철학의 여러 분과 중에서도 특히 윤리학-사회철학-정치철학에 이러한 성격이 강하다.

지금 우리사회, 21세기의 한국에서는 특히 이런 의학적 철학이 필요하다. 좀 절실하다.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다. 사람들의 정신상태와 행동양태가 엉망진창이다.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청진기를 들이대고 심장소리 허파소리도 들어봐야 하고 눈에 안 보이는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X레이도 CT도 MRI도 찍어봐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진단을 하고 약처방을 하거나 수술을 하거나 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철학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도 실은 그런 의학적인 철학이었다. 요즘은 그런 소리를 내는 철학이 별로 없다. 있어도 사람들이 아예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눈길도 잘 주지 않는다. 이런 현상자체도 이미 하나의 병이다. 사람들이 그걸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철학은 실은 정치라는 것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동서의 대철인 공자와 플라톤이 이미 그걸 알려준다. 그 둘은 다 정치라는 수단을 통해 철학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플라톤은 시라쿠사이로 향하는 배를 탔고 공자는 제나라 등으로 향하는 수레를 탔다. 아쉽게도 둘 다 그 정치적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언제까지나 유의미한 것으로 남아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어떠한가. 한국의 현실에 청진기를 들이대려는 의학적 마인드가 저 청와대와 여의도의 정치인들에게 있기나 한 것일까. 장관은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보도에 의하면 정작 정치인의 대부분이 다주택자라고 한다. 현금보유가 평균 5억이라고 한다.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과연 제대로 시행하겠는가. 이런 병폐는 이미 감기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이 나라의 정치 자체가 이미 중환자다. 한동안 입원해서 종합검진을 받아봐야 한다. 아마도 대수술이 필요할 것이다. 집도할 의사는 과연 있는가. 나는 유심히 세종로와 여의도를 살펴보고 있는데 아직은 별로 눈에 띄는 명의가 없는 듯하다. 한국의 고질병을 치료할 그는 지금 어디서 인턴과정이라도 밟고 있는 것일까? 철학과나 정치학과에서라도 그런 인물을 좀 키워야겠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꿈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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