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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항일투사 박준기 탄신 100주년추호석/독도사랑본부 의병대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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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2  18: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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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독도사랑본부 의병대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박준기 탄신 100주년

박준기(朴準基)선생은 진주 3·1운동 지도자로 건국훈장이 추서된 박용근 선생의 4남이다.

박준기(1917~2004)진주시 수정동107번지에서 태어나 진주공립보통학교를 제 19회(통상 30회)졸업생이 되었고 졸업 시기는 1930년 3월 24일이다.

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 동경, 대판 등지로 다니다가 가정 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선박 기술을 배워 4년만에 귀국했다.

도면을 보고 연삭(硏削)할 수 있는 최첨단 전문기술을 배워 귀국하니 곧 선박 기술이 항공기에도 연계되어 진해 항공창에 취업하게 된다.

그 당시 진해 항공창은 진해시 경화동에 소재했는데 항공창에 근무하면서 항일 결사대를 조직한 일은 대단한 용기와 애국애족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데 이를 시작했다.

부친의 항일정신을 어어 받았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박준기 선생은 52해군 항공창에서 비행기 수리와 소년들의 지도책임을 맡게 되었다.

일본의 침략 전쟁과 인명의 학살을 위한 비행기 제작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민족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선 청년들을 포섭해 가기 시작해 13명의 일심회를 조직했다. 일제를 타도하고 연합국이 진해에 들어오면 즉시 무장 봉기를 감행하기로 결의했다.

박준기 선생 등은 항공기 생산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고 일본인과 동일임금을 달라고 투쟁하고 일본인 노동자가 들어오면 은근히 배척했다.

행동이 수상하다고 여기고 조사해 보니 일심회가 친목 단체가 아니고 항일단체임이 발각되어 전원 체포되었다.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명을 붙여 5년 구형에 3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박준기 선생은 진주상고 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로 올라가 금호동에서 보험업 지점장으로 20여 년간 활동하고 동양전문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68년 건국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박준기 선생은 나주 나씨 나맹년과 혼인해 4남 4녀를 두었고 자녀중 영화감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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