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노인 예찬
진주성-노인 예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2.14 18: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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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노인 예찬


거제의 문대통령의 생가에 가면 허탈감을 안고 발길을 돌린다. 철망으로 된 사립문에는 들어오지도 말고 넘어다보지도 말라는 ‘부탁의 말씀’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개인의 주택으로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 사생활에 침해를 말라는 것이다. 당연한 권리의 주장이다. 하지만 먼 길 찾아 온 탐방객들은 허탈하다. 삼 칸 슬레이트집이 나직한데다 사방이 집과 담장으로 막혀있고 넘어다 볼 수 있는 낮은 담장위로는 비닐가름막까지 가려져 있어 슬레이트 지붕이나 불수 있을 뿐 아무리 까치발을 해봐도 집안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사립문 앞에는 트럭타로 막아서 접근조차 못한다. 못내 아쉬워하며 돌아서는 발길들이 안쓰럽다. 승용차로도 오고 관광버스를 타고 먼데서 온 사람들이다. 거제시에서는 생가를 개방 하려고 문전옥답을 사들여서 대형주차장까지 널따랗게 마련했는데 정작 생가는 거주자와 수차례 만났으나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는 소문이다. 사실도 모르고 사방각지에서 휴일이면 관광버스가 오고 승용차들이 줄을 잇는다. 허탈감을 삭이지 못하는 방문객들을 위해 인근의 노부부가 간간이 실정과 과거사를 일러주며 위로를 한다. 예순을 훌쩍 넘긴 고령의 김능원옹은 1.4후퇴 때에 LST군함을 타고 거제로 피난 온 문대통령의 부모의 후일담까지 들려주고 공용악 할머니는 문대통령이 태어나던 때와 유년시절의 이야기부터 지금의 생가 상황까지 소상하게 일러준다. 그 것도 운이 좋은 날 노부부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유럽속담에는 ‘노인이 한 분 죽으면 박물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노인은 과거사의 증인이고 당시의 주역이다. 문대통령 생가의 안내판에는 ‘문대통령 출생지’라고 했다. 그 집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면 생가가 맞는데 왜 출생지라고 했는가를 김능원 옹은 자세히 설명하며 남정과 냉정 그리고 명진리의 유래도 소상히 일러준다. 찬 새미가 있어서 냉정마을이라 했다는데 어릴 때부터 한학을 익혀 풍수 작위를 받은 김능원 옹은 고향의 유래와 옛 이야기 하나라도 후손에게 전하고 싶어서 틈틈이 시조를 지으신다.

“선자산 뒤를 막아 병풍이 되고/ 저수지 물이 차서 가물거리며/ 앞들의 정자나무 기념물 되어/ 명진리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냉정마을 찬 새미서 냉수가 솟아 /그 물로 지은 농사 내가 지었네/ 이 쌀을 잡수시면 백년 살리라” 박물관은 유물들의 무덤이지만 노인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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