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항일투사 조무준 탄신 100주년
진주성-항일투사 조무준 탄신 100주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2.20 18: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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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조무준 탄신 100주년


항일투사 조무준(趙武駿)박사의 호는 범만(凡晩)이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서 태어났으니 내년이 100주년이다.
조무준(1918-1989)의학박사는 함안 조씨로 단종대왕을 모신 생육신 조려(趙旅)의 후손이다.

조무준 선생은 옥종면의 4년제 보통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 곧 진주고등보통학교(진주고 전신)에 입학하여 3년간 우등상을 받고 졸업했다.(1937년 2월)

이 때 모친 진주 하씨의 독촉에 따라 파평 윤씨의 딸 윤정숙과 혼인했다.

뛰어난 두뇌를 가졌기 때문에 주위의 권유에 따라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 구주구유미(九州九留未)의과전문학교(현 구주의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1941년 1월 일본 구주의대 3학년 재학중 일본으로 유학 온 학생들을 모아 민족애국정신을 심어주었다.

1941년 9월 신입생 환영서 “일제는 망한다. 조선독립은 멀지 않았다. 우리가 일본보다 우수한 민족이다”라고 말하는 등 애국애족정신을 강조하고 반일단체를 조직하려다 일경에 사전에 발각. 피체되어 1941년 10월 21일부터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받고 1942년 11월 9일 일본 복강재판소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고국으로 귀향한 다음 골방에서 지내다가 만주로 가기로 작정했다.

만주지역의 국립용정의학대학에 편입서를 내고 합격했다. 1945년 광복되기 직전에 졸업장을 받고 귀향할 수 있었다.

1948년 서울대학교병원 내과에서 근무하고 1950년부터 의령군 보건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일을 열심히 했다.

1958년 미국 추렌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65년에 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진주시 윤양병원 의무원장으로 장기간 근무하고 1998년 한시집 <환향>을 남기게 된다.

정부에서는 조무준 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하동군 옥종면 국도변 체육관 입구에 항일투사 추모비를 건립할 때(2015년 8월15일) 조무준 선생의 공적도 깊이 새겨 영원히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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