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2.2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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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조/premiere 발레단 단장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감독이 만든 ‘부산’을 무대로 하는 영화가 한 편 더 나왔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지금 썩 괜찮은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극장으로 몰려갔던 관객들 가운데 나도 슬그머니 끼어 있었다.

우선 이 작품이 부산을 배경으로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있던 재미가 더욱 더 쏠쏠해졌다. 왜 그러한가. 먼저 ‘부산’이라는 공간이 갖는 특이성 때문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사이’에 있다. 언뜻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지만, ‘이도 저도 아니다’는 동시에 ‘이도 저도 된다’는 묘한 역설적 색깔을 띠게 된다. 그렇다면 부산은 ‘이중’적이다. 이것이 내륙의 분지와는 다른 아주 독특한 부산의 공간성이다. 이 같은 부산의 공간성은 아울러 독특한 부산의 시간성을 형성해 왔다. 별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 되어 버린 시간. 이 시간이 어떤 시간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부산이 누려왔던 영화榮華의 역사를 일별一瞥해 보면 된다.

 을사조약 후인 1907년에 부산부府가 설치 되어 동래부와 분리되기 이전까지 부산은 한낱 포浦에 불과했다. 지금은 부산에 ‘속’해 있는 많은 포구들, 지금도 그 이름이 그대로 살아 있는 다대포와 분포를 비롯해서 장림(포), 해운대(해운포), 재송(포), 대평(포)등과 같은 포구에 불과했던 부산포는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개척을 위한 여러 전략으로 인해 덩치를 불리게 된다. 6·25동란同亂(원래는 ‘움직일 동’자를 써서 ‘動亂’이라고 표기하지만 여기서는 ‘같을 동’자를 쓰고 싶다)의 와중에는 임시수도까지 되기도 하면서 동同란 이후에는 이 땅의 제2도시로 줄곧 자리매김하고 있다(이것을 두고 우쭐대고자 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으니 독자제현의 오해 없으시길). 별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 되어 버렸다, 부산은. 그런데 무엇이 되었다는 것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별것도 아닌 것과 무엇의 시간적 사이’ 속에서, 또한 ‘이도 저도 아닌 혹은 이도 저도 되는 공간적 사이’ 속에서 죽 살아 온 이들의 일상이다. 그 일상이 역시 이도 저도 아니지만 이도 저도 되는 공간인 ‘세관’(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4년 영화 ‘터미널’의 공간적 배경인 ‘공항’과도 흡사한)에서 일하는 영화의 주인공, 이도 저도 아니지만 이도 저도 되는 ‘최익현’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우연의 일치일까. 공교롭게도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이 경주최씨 ‘최익현’은 구한말 의병장으로 적지 대마도에서 스스로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대쪽선비인’ 경주최씨 면암 ‘최익현’과 이름이 같다).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이도 저도 아니지만 이도 저도 되는 ‘잡종형 인간’ 최익현이다. 경계인, 어정쩡한 인간의 ‘존재론적 우위’가 드러나게 되는 짜릿함. 평생을 총알하나 장전되지 않은 ‘빈 총’과도 같은 허세로 일관해 온 것만 같은 이 인간이 살아남은 까닭을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요즘 들어 한 지인의 소개로 읽고 있는 김영민 선생님의 ‘공부론’에서 나름의 답을 찾았다. 바로 ‘인이불발引而不發’의 묘 즉, ‘당기되 쏘지 않는다’는, ‘알면서도 모른척한다’는 그 묘리에 감히 최익현의 삶을 갖다 붙여보고 싶었다. 최익현은 끊임없는 어리석음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며 그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살아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고. 최익현은 그렇게 살아남아 ‘로비스트’라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로비스트와 관련된 지식을 구성하는 그 모든 조건들을 그는 ‘배움’으로써 몸에 새겨온 것이다. 잡종형 인간인 최익현이 거두는 창조적 승리!

이 영화는 이런 측면에서 이전에 부산을 다뤘던 영화와 다르게 다가온다. ‘중앙’에 비해 더욱 더 야만스러운 ‘지방’을 그리는 것이 흡사 그 지방의 정체성을 옳게 기술하는 방식이라 믿었던 듯한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부산이라는 지역을 비추는 방식에 있어서 한층 더 성숙해진 영화가 아닌가 한다. 별점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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