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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조선시대 교육기관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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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6  18: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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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조선시대 교육기관

2018년부터 중학교에서 자유학년제 교육을 실시 운영한다.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반 교과목을 배우고 오후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예체능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한다. 중학교는 초등학교 때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중등교육을 실시하는 의무교육이라 나라에서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

고려말기인 1389년 이성계, 정몽주는 교육기관을 정비 주자학 보급과 진흥을 통해 인재들을 길러내는 중요한 일로 중앙에는 오부학당을 세우고 지방에서는 향교를 정비해 교육을 꾀했다. 정몽주가 왕에게 건의하여 개경에 동서중남북 다섯 곳에 학교를 세우고 1127년 인종(17대)이 군·현에 세운 향교는 지방 인재를 가르치던 관립 교육기관이다.

오부학당과 향교제도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한양에 사부학당을 세우고 북부학당은 세우지 못하여 사부학당 또는 사학이라 했다. 입학 자격은 양반과 양인 자제로 8세 이상 15세가 되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 한해 승보시라는 시험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진학시켰다.

향교 역시 국가에서 운영하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건물 토지 운영비등 국가에서 지원했다. 1550년 영의정 이기 등 대신들이 명종임금에게 아뢰었다. 풍기(경북 영주) 백운동 서원은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창립한 것인데 현재 풍기군수인 이황이 주세붕의 뜻을 훌륭히 여겨 편액(현판)과 서적, 토지, 노비를 하사해 줄 것을 건의. 이황은 편액과 서적을 하사했다. 서원은 조선 중기이후 지방양반들이 세운 사립 교육기관으로 규모가 큰 것은 고등교육기관(대학교) 작은 곳은 중등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명종은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향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존경받는 유학자들에게 제사를 드렸지만 서원에서는 우리나라 유학자들만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백운동 서원 이후 안동 도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등 여러 사액서원이 생겨났고 전국적으로 서원이 늘어나면서 임금이 공인한 사액서원만도 130여 곳에 이를 만큼 많아졌다. 서원은 처음에는 지방 인재 양성과 마을 질서유지 등 여러 역할을 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1860년대 후반 흥선대원군은 문제 많은 서원을 문 닫도록 하는 ‘서원 철폐령’을 내렸고 결국 전국적으로 47곳만 남기고 훼철했다.

오늘날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서당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마을 부잣집에서 훈장을 초빙 아이들을 불러 모아 다양하게 운영했다.

7-16세 남자 아이라면 누구나 입학 할 수 있었고 천자문을 시작으로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사서오경 등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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