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생·환생·이승·저승
칼럼-전생·환생·이승·저승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02 18: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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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

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전생·환생·이승·저승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하여 궁금해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진시황도 칭기즈칸도 불로초를 구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만큼 우리는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러나 어쩌랴, 땅의 기운을 받고 있는 우리 육신은 유효기간이 있다. 누구든지 예외는 없다, 죽다는 한일(-)자와 숙이다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한일자는 하늘을 말한다.

즉 하늘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생명이 다하는 것으로 알지만 생명은 순환할 뿐 끝이 없다.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밤과 낮이 공존하고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듯이 알고 보면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몸에는 새로운 세포들이 수시로 나타나고 앞선 것은 스스로 물러난다.

한 세포가 그러하듯 한 인간도 그러하다. 뚫어지게 바라보면 삶과 죽음은 없는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 더 이상 겁내지 말라.

전생은 우리 앞의 삶이다. 그것은 시간의 차이고 전생은 이어지고 계속되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지나가는 것이 전생이다. 과거에 나는 누구누구였다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그것은 바로 번뇌에 빠지는 눈길이다. 전생은 우리가 창조하는 현생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에 집중하여 선택하고 창조하는 삶이 전생을 잘 가꾸는 비결이다.

다음은 환생이 있다. 많은 이들이 착각을 한다. 다시 돌아오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질량불변의 법칙에 의해 우리 몸은 죽으면 기화수토로 변하고 영혼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래서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몸은 땅으로 영혼은 하늘로 가는데 가는 장소를 모르면 방황한다. 우리의 영혼은 가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육신은 우리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영혼은 순도에 따라서 그 위치가 결정된다. 흙탕물을 컵에 담아 가만히 두면 맑은 것은 위로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가라앉는 이치와 같다. 그러니 수행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 여길 덕목은 양심을 지키는 일이다.

환생은 특별한 사람만 죽었다가 살아나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환생은 밝을 환. 날 생이다. 환~하게 웃으면 모두가 환생하는 것이다. 살아서 환생하는 것 환생하고 싶으면 얼굴을 환~하게 웃으면서 옆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환~하십니다”라고 하라. 주변에 환~한 빛에너지가 일어나며 금방 환~해 진다.

인류 최초로 환~한 사람은 환인이며 밝은 빛의 국가는 환국이다. 환웅이 세운 국가는 ‘밝은 땅’ 배달국이며 단군이 세운 국가는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 조선이다 우리 민족은 빛의 사상을 갖고 있는 환한 민족이다. 몽고에서는 우리를 무지개의 나라라고 한다. ‘환~하다’는 말만 깨달아도 환생하는 복 받은 민족이다. 한민족은 한에서 와서 한으로 돌아간다. 한을 하나라고 하고 높여 불러 하나님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각자가 모두 하나님이다. 귀하지 않는 이들이 없다. 한민족의 한 사상이고 빛으로 거듭남의 비밀이다 우리 말 속에 우리가 원하는 답이 있다 외국 말 종교 사상에 빠지지 말고 우리말의 비밀을 열어보라. 우리 말 속에 비밀이 있다. 우리말이 지쳐있는 대한국인에게 톡톡 힘이 되는 청량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승과 저승에 대하여도 궁금해 한다. 이승은 한마디로 이 동네이고 저승은 저 동네이다. 삶과 죽음이 따로 없으니 눈을 감으면 저 동네이고 눈을 뜨면 이 동네이다. 똥통을 기어도 이승이 낮다는 말은 저승이 무섭고 나쁘니 절대 가지말자는 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인간적인 양심으로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이다. 저승은 요단강을 지나서도 낙동강을 지나서도 비행기를 타고 북극을 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저승은 바로 코앞에 있다. 저승은 겁나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여행지이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리 없는 저승이 좋을 지라도 나는 결코 행복하게 지낼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나쁜 버릇은 여기 이승에서 버려야 한다. 이승에서 즉 이 동네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저 동네에서도 그렇게 한다.

이 동네에서 이웃과 잘 지내는 법을 익히고 실천하라. 그래야 저 동네에서도 그렇게 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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