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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적선 대가 박필종(朴弼鍾)선생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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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3  18: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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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적선 대가 박필종(朴弼鍾)선생

박필종(1850~1938)선생을 적선대가로 앞세워도 손색없는 분이다. 박필종선생은 밀양박씨 송월당의 후손으로 경남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에서 박현경(朴憲景)과 경주김씨 슬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0대 초반이었던 고종시대 초기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사과벼슬을 지낸바 있으나 낙향하여 부지런히 농사에 종사했다.

그의 근검(勤儉)절약(節約) 덕분에 재산을 많이 모아 45세 전후에 수천지기 전답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문선(文善)박필종 선생의 적선은 경남일보 1910년 3월 31일자와 4월 24일자에 보도되었다.

그가 소유한 전답에서 소출된 백여 석을 판 대금 중 기와집 한 채 값인 1천 냥을 준비하여 산청군 덕산에 가서 남명 조식(曺植)선생을 위한 비석(碑石)건립 비용을 기부하셨다. 오늘날 까지 전해오는 비석 중에 하나로 인정되는데 박 선생의 희생, 봉사정신을 읽을 수 있다.

사천시 곤명면 월평리에 사는 전 참봉 이규하가 완사평을 방축하고 개간하려다 실패하여 화곡(禾穀)대금 160원을 갚을 길이 없다고 말하자 60원을 탕감하여 100원만 갚아도 된다고 승낙해 주니 세상 사람들이 박 선생의 자선심을 칭송했다.

1920년 진주고, 진주여고 설립운동이 전개될 때 발기인으로 동참하여 그 당시로는 엄청난 거액인 2천원을 기부하셨다.

1922년부터 하동군 북천면 북천초등학교 설립운동이 전개될 때 문영빈, 사위 정태장을 설립위원회 부회장, 총무로 각각 지명하여 봉사케 하고 전 재산의 절반에 해당되는 5000원을 기부하여 4000여명 졸업생을 배출케 하는 공적을 쌓았다.

1922~1926년 사이에 소작인들을 위해 소작료를 면제해 주거나 절반(50%)만 받음으로서 그의 적선을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 가난한 소작인들을 위해 전답 500여 평을 각기 분배하자 박 선생의 자선심을 모두들 감복했다는 기록도 있다. 자신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한 적선은 전국적으로 아주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작인들이 성금을 모아 시혜불망비를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세워주게 되는데 박 선생은 1938년 8월 14일 별세하자 묘소가 시혜불망비에서 백보이내에 안장되었다.

박 선생의 아들은 박우찬(朴雨燦)이고 손자는 박용수, 박위병, 박점병 등인데 진주시 수정동(현 중앙동)에 거주했고 증손자 박진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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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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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종 선생 후손들
박선생 조상의 공적을 알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2018-01-24 14:57:05)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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