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칼럼-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07 18: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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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새해 첫날 아침, 받고 싶지 않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머님께서 많이 위독하시다”는 중환자실 간호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못난 아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당신께서는 뭐가 그리 급한지 세상을 떠나셨다. 자식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과 서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아이들도 따라 울었다.

시골에 혼자 계시던 70대 초반의 젊은 어머님께서는 지난해 광복절 날, 왼쪽 팔 다리에 마비가 왔다. “집에 다시 돌아오기 힘들겠다”며 시계를 풀어주고 준비해 둔 수의를 보여 주었다.

화가 나서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그만 수의를 집어던지는 불효를 저질렀다. 정신도 건강하고 말씀도 잘 하셨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대구에 있는 뇌혈관질환전문병원으로 후송해서 검사를 한 다음 입원했다. 한 달이 지나자 감각이 없던 팔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졌다.

거창에서 대구까지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병실에 누워 당신 걱정보다는 아들 염려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만약 자식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

장례를 마치고 주인 없는 방에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귀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검정색 나무 벼루 통이 책 더미 사이에 놓여 있었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사용하시던 것으로 65년이 넘었다. 조심스럽게 통을 열자 벼루와 먹, 작은 붓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고인은 거의 매일 저녁마다 어린 필자에게 먹을 갈게 하면서 붓글씨를 쓰시곤 했다.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미각지당 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에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는 뜻이다.

송나라 유학자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憙)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그 말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시간과 기회가 있을 때는 차일피일 미루고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학문을 이루는 것이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나간 다음에서야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2011년 12월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며칠 후에 어느 교도소에 출장을 갔다.

화장실에 생텍쥐페리의 “부모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노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혼자 계신 어머님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몇 차례 시골로 내려갔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뜸해졌다.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살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었다. 이제와 후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새벽에 내린 찬 서리가 아침 햇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새해가 밝았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한해가 끝날 때 그 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느낄 때이다”라고 했다.

올 연말이 행복할 수 있게 시간을 아끼며 열심히 사는 게 효도다.

늦기 전에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라도 드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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