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삶과 죽음은 그저 길 떠나는 것이다
칼럼-삶과 죽음은 그저 길 떠나는 것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09 18:2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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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삶과 죽음은 그저 길 떠나는 것이다

인생은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시간을 귀하게 쓰면 철든 사람이며, 시간을 낭비하면 철이 덜든 사람이다. 우리가 태어남을 생(), 죽는 것을 사(), 살다 죽는 것을 생사(生死)라 한다. 인간은 어찌 보면 벌레처럼 힘없는 존재여서 호흡하나 멈추고 나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
죽음과 저승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자 땅 밑에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지난 일은 과거로 묻어두고, 미래를 걱정 말며, 숨 쉬고 있는 현재에만 충실해야한다.

모든 일에서 욕망을 줄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갈 때 행복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 앞에는 오르막길, 내리막길, 지름길과 샛길 등, 무수한 길들이 놓여 져 있다.
먼 길을 둘러가면서도 바른길만 택하고 현재에 충실하다 보면 부족함과 아쉬움도 느끼게 되겠지만 이것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적위자(認賊爲子)’도적을 자식으로 삼는다.”원각경의 가르침이 있는데 그 도적은 바로 욕심이라는 뜻이다.
욕심이 많으면 감사할 줄 모르고, 늘 불평불만과 무리한 행위를 반복하여 자신이 지은 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비록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도 정신이 빈약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 건강한 육체를 남을 돕고 아끼는데 써야한다.

어떤 사람들은 생산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기능과 능력을 남을 이롭게 하는데 쓰지 않고, 부귀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빌붙어서 그들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기도 한다.

삶은 유득필유실(有得必有失)이어서, 살다보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잃은 것이 많다하여 아까워하거나 분통 터트리지 말자. 모든 일은 순리대로 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러 놓으면 반드시 처벌이 돌아온다. 모든 소유는 영원한 내 것이 아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므로 얻고 잃는 순간에도 평상심을 유지해야하며, 비록 손해를 보아도 화내거나 악으로 갚지는 말자. 원숭이가 다니는 길목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그 속에 먹이를 넣어두면 원숭이는 구멍 속의 먹이를 붙잡고서 위험이 닥쳐도 먹이에 대한 욕심 때문에 꼼짝하지 않아 쉽게 잡혀들고 만다. 이처럼 사람도 재물과 지위에 대한 욕심이 많으면 그 욕망을 붙잡고, 하루 세 끼 밥 먹듯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욕심을 버리면 너그러워져서 즐겁고 행복하여 혼자 방안에 앉아있어도 쿡쿡 웃음이 나오고, 남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빙그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이러한 자비의 이치만 이해하고 깨달으면 부족함이 없어진다. 부귀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은 왕성하게 힘이 넘쳐 호시절을 보내고 있겠지만 한발자국 삐끗하는 날이 오면 벼랑으로 굴러 떨어져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 반성할 일은 없는지 돌아보자.

짐승에게도 자비의 성품은 있다. 맹수들이 새끼를 사랑으로 감싸고 양육하는 것도 바로 자비의 성품이다. 남에게 무엇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남에게 작은 인정이라도 베푸는 사람이 되어보자. 부처님은 하루 한 끼 탁발로서 허기를 채우셨고, 맨발로 걸으셨다.

과욕은 남에게 많은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까지 망쳐버린다. 부귀영화를 향하여 무리하게 에너지를 쏟으면서 가슴 아파하고, 휘둘리며, 휘청거리지 말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죽음은 막을 길이 없다. 죽음을 막아낼 위인이라면 뱃속에 똥을 담고 살겠는가.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살아가보라. 삶과 죽음은 그저 길 떠나는 것이다.

진광불휘 진수무향(眞光不煇 眞水無香)이라, 진짜 빛은 화려하지 않고, 진짜 물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듯이 드러나지 않는 선행을 행동으로 옮겨서 서로에게 도움 주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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