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별 헤는 겨울밤
세상사는 이야기-별 헤는 겨울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17 18: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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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별 헤는 겨울밤


삶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찾는 곳이 있다. 돈 없이 가도 되고 사전 연락이나 밤낮을 가릴 필요도 없다. 비가와도 좋고 바람 불고 눈이 내려도 좋다.

가장 훌륭한 의사이면서 얼굴 표정만 봐도 마음을 꿰뚫어보는 심리학자요 최고의 요리사. 그곳에는 언제나 아무 조건 없이 반겨주는 ‘내편’이 있었다. 신이 인간을 일일이 다 돌보지 못해 내려 보낸 존재, ‘어머님’이 계시던 꽃피는 산골.

지난 토요일, 모든 것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시던 품이 그리워 시골로 내려갔다.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새해 첫날에 돌아가신 당신께서 방문을 열고 나오시는 환영(幻影)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우리 밤나무 산으로 올라갔다. 바위에 걸터앉아 합천호를 바라보면서 어머니 생각에 한참 동안을 가슴으로 울다가 내려왔다. 마음을 다잡고 집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밀려왔다.

저녁 한 끼 해결을 위해 부엌에서 라면을 끓였다. 더 이상 맛 볼 수 없는 손수제비, 손칼국수, 늙은 호박으로 전을 부치면 그 옆에서 군침을 삼키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

그 옛날 겨울밤, 아버님은 붓글씨를 쓰시고 어머님께서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곤 하셨다. 필자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꾸벅꾸벅 졸았다.

동네 개 짓는 소리에 잠에서 깨면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봤다.

곧 쏟아질 것 같은 초롱초롱한 별과 은은한 달빛이 우리 집을 환하게 감싸던 풍경.

모두 떠난 방안에 혼자 불을 끄고 누웠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가 창밖으로 흐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 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 듯
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 세상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웠지만 마음이 허전하다. 쉬이 잠들지 못해 마당으로 나왔다.

장독대 옆에 서 있는 20년 넘은 동백나무가 외롭다. 필자가 손톱을 깎아 줄 때 환하게 웃으시던 얼굴 하나가 달빛에 비친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를 불러본다.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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