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설날유래와 인생수업,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도민칼럼-설날유래와 인생수업,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23 19: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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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창원 참사랑 봉사회장

권영수/창원 참사랑 봉사회장-설날유래와 인생수업,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제 얼마 후면 2월을 맞이하게 된다. 4일은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立春)과 함께 16부터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눈앞에 다가 오고 있다. 필자는 설날이 다가오면 어린시절 같은 또래들과 목청 놓아 수없이 불러 보았던 ‘까치설날’에 대한 노래를 지금까지도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몇 번이나 불러보고 있다.

1.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뎅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2.우리언니 저고리 노랑저고리 / 우리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셔요

예로부터 섣달 그믐날을 까치 설이라고 불러왔다. 즉 작은 설을 가리켜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고 했다. 아치는 작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설의 아치의 뜻을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어 불렸다고 한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1927년에 까치 설에 대한 노래를 작곡 작사한 윤극영 선생은 이북 출신이지만 경기도 지방의 언어와 문화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시사 하고 있다. 까치설의 설화(說話)를 보면 삼국유사에 기록 되어있는 신라 소지 왕때 왕후가 어느 스님과 내통 하여 왕(王)을 해 하려 하였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이를 모면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가지에 드는 동물이라 그날을 기념 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만한 날이 없어 설날 하루 전날을 바로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 설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설날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면 나름대로 역법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에 대한 기록 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역법을 모방해온 것이 아닌 자생적인 민속력을 가졌다고 알 수 있다. 중국의 사서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하례해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원신을 배례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삼국사기 제사 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때는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287)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해왔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제 36대 혜공왕(765~789)때에 오묘 태종왕, 문무왕, 미추왕의 조부(다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돼 있는 것을 볼 때, 오늘의 설날과 같은 유사성을 짐작하게 된다.

이를 볼때 설 명절은 수백년 전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고유 명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마다 명절 연휴가 되면 일부 중산층들이 해외에서 명절을 보내기 위해 몇 달 전부터 비행기 표가 매진 됐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일부 어르신들은 곱지않은 말을 내뱉기도 한다. 설 명절은 조상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에서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고향에서 설 명절을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필자는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어리광을 부릴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고아 아닌 고아로 전전하면서 생일 없는 소년으로 살아왔다. 나름대로 생존법칙(生存法則)을 쌓은 후 세상을 알기위해 정의(正義)를 위해 독재군부(獨裁軍部)들과 맞서며 또한 암흑(?)가의 세계에서 험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도 내가 선택한 인생수업(人生修嶪)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럴때 마다 고향에 어머니를 생각 하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 내기도 했었다. 어머니는 설 명절이 다가오면 해마다 동구 밖에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눈보라가 몰아치는 맹추위 속에서도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떠난 지금은 동구 밖에서 기다려 줄 사람도 없거니와 설날의 분주함속에서도 오직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아련한 추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토록 설 명절이 그리웠던 것은 그 자리에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오늘밤도 생전에 어머니를 모습을 그리며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어머니하고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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