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하만복(河萬僕)전 국회의원
진주성-하만복(河萬僕)전 국회의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31 18:39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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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하만복(河萬僕)전 국회의원


경남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하종락씨와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부모로 하여 1914년 1월 30일 출생하신 하만복 선생은 소년시부터 영리하여 서당에서 명심보감(明心寶鑑),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을 배우실 때도 똑똑하고 영리하여 가르치는 선생이 더 이상 가르칠 내용이 없다고 손을 놓았다고 전해 온다.

초계 정씨 정노경씨와 혼인한 다음 해 18세 되던 해 그의 부친께서 갑자기 별세하시자 슬픔을 다하고 장례절차를 진행할 때 엄숙하고 소홀함이 없자 모두 다 칭송했다고 전해 온다.

3년 상을 무사히 마치자 진주시장통에서 해산물 위탁 판매업을 시작해 큰 돈을 벌었다.

1934년 여름 진주시내 가난한 주민들이 호세(주민세)를 내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시고 선친이 남기신 유산 중 절반에 해당되는 2000원을 투입해 대납함으로서 진주군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했다는 기록은 <영남춘추>1934년 9월 1일자 37면에 보도되었다.

같은 해 1934년 여름에 임진공신들 김천일, 최경회, 황진, 고종후, 김준민 장군 등을 모신 진주성내 창렬사를 중건할 때 서슴치 않고 기부금(寄附金)을 내신 분으로 기록된다.

1936년 병자년 여름에 대 홍수로 진주시내가 모두 물에 잠기지 않은 곳이 없을 때 자신의 피해도 막심하지만 수해 의연금 백원(60kg 5~6원)을 기부한 분으로 유명하다.

진주시 수정동에 거주할 때 진주하주운송(주)상담역으로 일하셨고 1935년 3월부터 하신상사(河信商社)를 경영할 때도 꾸준하게 선행과 자선 독지를 실천하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복 후 입법위원(立法委員)이 되셨고 제헌의원에 출마하여 4895표를 획득하고 2대 민의원(民議院)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1.164표로 당당하게 당선된 분이다.

1965년 8월 2일 만 51세 되던 해 외동 딸 하차임을 두고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하실 분인데 라고 말하며 애석하게 여겼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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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통차 2018-02-01 12:00:01
하만복 전 국회의원 반민족 처벌법 조사관 이력도 있어요 다시 확인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