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방심
또 강추위가 시작 되었다. 해마다 겨울만 되면 수돗물이 어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10개의 가게가 있는 상가 건물에서 생활한지 어언 20년이 다 되었다. 1층은 가게 2층이 살림집이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건물 맨 끝에 위치해 있다. 건물관리를 맡다보니 가게와 살림집의 수도보다 화장실의 수돗물이 얼까봐 더 걱정이다. 잠시라도 물이 안 나오는 화장실을 생각하면 진짜 머리가 쭈뼛 선다. 상가의 사람들이 다들 힘들게 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생각에, 아니 최소한 불편함을 더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만 하면 노심초사하게 된다.
수돗물은 영하 10도 이하에서는 4시간마다 물을 완전히 틀어 콸콸 나오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쨀쨀 나오게 틀어놓아도 바깥의 찬공기를 못 견디고 그냥 얼어버린다. 또 영하 15도 이하에서는 3시간마다 틀어주어야 한다. 영하 20도 이하에서는 2시간마다 그짓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낮에는 다른 일을 보면서 틈틈이 물을 틀어 관리를 한다지만 밤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번 한파에서는 추위가 한풀 꺾이는 마지막 날을 보내고 나니 몸살이 나버렸다. 수돗물은 안 얼리고 무사히 한파를 보냈지만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참 인생하고는!
몸살을 하면서도 스스로 대견했다. 몇 십년 만의 강추위 속에서 상가 사람들을 위해 수돗물을 안 얼렸다는 긍지로 몸살도 당당히 앓았다. 누가 알아주든지 말든지 말이다. 그리고 요 며칠 낮 기온이 영상으로 돌아오고 밤 기온도 영하 10도를 넘지 않았다. 낮에 햇살이 제법 따뜻하게 느껴질 때는 너무도 감사해서 행복했다. 그래서 입춘도 되고 했으니 이대로 봄이 왔으면 하고 기대하며 몸살도 보냈다. 웬걸, 다시 한파가 몰려온다고 예보를 하고 핸드폰엔 한파주의보가 떴다.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지난번 한파를 무사히 보낸 경험도 있고해서 그다지 걱정하진 않았다.
경험으로 볼 때 낮 기온이 영상이었고 추위가 시작되는 날이면 밤 10시까지는 물을 쨀쨀 털어놓지 않아도 얼지 않았다. 그걸 믿었던게 방심이었다. 물이 얼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데 물이 안 나왔다. 물이 나와야 하는 구멍마다 너무도 인정머리 없는 표정으로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수도꼭지라는 꼭지는 다 틀어봐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물은 이미 싸늘하게 돌아서 꽁꽁 얼어버린 후였다. 나는 믿기지지 않아 수도꼭지를 틀고 또 틀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던 마음은 서서히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아니 어떻게 그새 얼어?
손이 시리고 발이 시리도록 배신감을 어쩌지 못하고 화장실을 서성거렸다. 끝내 나는 그 배신감은 바로 나 자신의 방심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머리를 화장실 벽에 찧고 싶었다. 바보 멍청이…자신에게 온갖 저주를 다 퍼부었다. 그새 방심을 하다니 저주를 들어도 싸다 싸!! 이러고도 어떤 인터뷰에서 자칭 ‘생활의 달인’이 어쩌고 저쩌고 한 게 생각나자 진짜 콱 죽고 싶었다. 이 나이 되도록 이 지경인지, 방심이 원수다. 이 방심을 확 뜯어 고치지 않으면 인생이 한방에 훅 갈수도 있다. 내일 모레면 환갑이다!! 방심없이 다시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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