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갈등이 심할수록 활기찬 사회다
칼럼-갈등이 심할수록 활기찬 사회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2.13 18:4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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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갈등이 심할수록 활기찬 사회다


세상이 정의롭거나, 정의롭지 못해도 항상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서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바다를 향하여 “파도야 치지마라”고 아무리 외쳐도 파도는 치게 되어있다.

파도 없는 바다는 썩고, 죽어, 사해(死海)가될 것이므로, 파도는 치고 태풍도 불어야한다.

우리사회에도 파도치듯,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고, 갈등이 심하면 심할수록 활기찬 사회란 증거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에 매몰되거나 미래의 걱정에 사로잡히는 스스로의 갈등은 일으키지 말라. 인간은 허영덩어리여서 어제의 불행과 미래의 걱정에 매몰되기 쉽다.

‘살아 있다’는 의미의 ‘활(活)’과 ‘물방울이 튄다’는 의미의 ‘발(潑)’을 결합시키면 ‘활 발’이 된다. 고래가 바다 속에서 힘차게 도약하는 것처럼 활발하고 역동성 있게 살아가자.

그러려면 마음부터 너그럽게 가져서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해 나가야한다.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꾸면 “행복한 웃음이 나온다” 늘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모든 사람들을 예쁘게 보는 눈을 가져보자. 특히 친구나 배우자를 바라볼 때는 “당신 참, 고생이 많다. 나보다 더 부유하고 멋진 사람을 만났더라면 훨씬 행복할 텐데. 나를 만나 고생이 많다”고 생각해 보자.

독일의 시인 쉴러는 “친구는 기쁨을 두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해 준다”했다. 부부사이든 친구사이든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화합(因緣和合)’의 결과물이다.

만난 인연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인연이 끝날 때는 집착하지말자. 우리의 일상은 서로가 주고받는 행위의 반복이다. 크게 주면 크게 받고, 작게 주면 작게 받고, 내가 욕을 하면 욕이 돌아오고, 때려주면 주먹이 날아오는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인과법이다.

그러니까 첫째, 욕을 하지 말아야한다. 욕하는 버릇을 고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남을 속이고 험담을 하고 시비하는 버릇을 고쳐야한다. 그런 것은 살인죄 못지않게 심각한 죄라서 반드시 그에 상응한 과보를 치르게 된다. 차분하게 진실만을 말하며 바르게 살아가자. 거짓으로 허송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 찰라의 순간도 아깝기만 하다.

사물이나 사람에게도 불변의 실체는 없다. 이 사실만 인정하면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마음의 고통이나 불만족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황금만능주의에 결박당한 자아를 해방하고, 이익을 위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지 말자. 가치관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며, 정신이 생명의 본질이다. 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경하며 살아가자. 상대를 존경한척 이것저것 묻고, 실력테스트를 해보며 은근히 자기 실력을 과시하는 못난이들 앞에서도 화내지 말고 조용하게 넘어가버리자. 최상의 이익은 인내에서 온다.

우리는 잘나 보이기 위해 살고 있지 않고, 죽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소박한 마음으로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도 자꾸 줄여나갈 때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행복하려면 주변에 좋은 친구를 많이 두어야한다. 좋은 친구란 첫째, 잘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둘째, 부드럽고 친절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셋째, 친구에게 이익이 되는 언행을 해주는 사람이다. 넷째, 항상 입장 바꿔 생각해주는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다.

다섯째, 정직한 사람이다. 좋은 친구는 어떤 부탁을 해와도 핑계대거나 속이지 않고, 어려울 때 상대의 몸과 재물까지 보호해 주며, 두려워할 때는 의지처가 되어 주고, 곤경에 처했을 때 그 곁을 떠나지 않으며, 친구의 자식도 자신의 자식처럼 대하면서, 축하할 일과 도움 줄 일에 적극 나서주는 사람이다. 오늘도 크고 작은 갈등 속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과 상처를 보듬어주는 환희심으로 희망찬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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