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음력(陰曆)과 양력(陽曆)(2)
도민칼럼-음력(陰曆)과 양력(陽曆)(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3.01 19:0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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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한/합천애육원장

서정한/합천애육원장-음력(陰曆)과 양력(陽曆)(2)


금년 음력설 연휴에 남해 독일마을을 방문했다. 커피숍에서 조 모(35)씨를 만났는데, 자기는 1984년 2월 29일에 태어나 자신의 생일만 달력에 없다고 했다. 조 씨는 윤일(閏日)애 자신이 태어나서 그렇다는 걸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알았다.

흔히, 1년을 365일이라고 배운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한 바퀴 도는 공전주기를 태양년이라고 하는데, 태양년은 정확히 365.2422일이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차이지만 오랜 기간 이 격차가 누적되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 실제 공전주기와 태양년의 격차를 4년마다 달력을 고쳐주고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윤달>도 있다. 윤달은 태양시간의 오차를 줄여주는 윤년과 달리 음력과 양력의 차이를 채우기 위해서 생긴 개념이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달력(태양력)은 365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음력(태음력)에서 한 달은 29일과 30일을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 음력에서 1년 12달을 환산하면 354일에 불과하다. 대략 11-12일의 차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 변화를 일치시키지 않으면 계절의 추이를 담기 어려워진다. 3년에 한 달 혹은 8년에 석 달의 윤달을 음력에 넣는다.

우리조상들은 예로부터 윤달을 공달(空月)이라고 불렀다. 예년에 비해 한 달이 더 많기 때문에 조상(귀신)이 알지 못하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대로 신(神)이 없는 달로 알려져 묘를 이장하거나 수의를 장만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때문에 윤달에는 결혼이나 이사를 하면 안 된다는 속설도 생겼다.

흔히, 양력은 해의위치(지구의 공전)를 기준으로 한 날짜를 말한다. 반면 음력은 달의 모양변화(달의공전)를 한 달로 삼았다.

우리 선조들은 음력을 주로 써왔다. 하지만, 음력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바로 날씨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 날씨는 사실상 해의위치(지구의 공전주기)에 따라 달라졌다.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1년을 약 15일씩 나눠 24절기를 만들어 사용해왔다.

서양에서 양력에 따라 일주일(7일)을 기준으로 생활했다면 중국과 우리나라는 15일을 주기로 생활했다. 한식, 단오, 삼복(초복, 중복, 말복), 칠석은 24절기가 아니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고, 단오는 음력 5월 5일이며, 초복은 대략 7월 11일부터 7월 19일 사이가 된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로 돌아오는 경일(60개의 간지중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이 초복이 되고, 네 번째 돌아오는 경일(庚日)이 중복이다, 그리고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庚日)이 됨으로 초복과 중복은 열흘간격이 되고 중복에서 말복까지의 기간은 해마다 일정하지 않다. 초복과 중복은 하지를 기준점으로 하고 말복은 입추를 기준점으로 한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원리의 태음태양력을 사용하지만 자오선(子午線)이 다르기 때문에 설날이 다른 날에 올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1시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음력달이 바뀌는 기준점이 한국시간으로 0시 30분에 있다면 중국에서 23시 30분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음력설과 날짜가 달라진다.

까치까지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설날은 오늘이래요, 고(故)윤주영 선생이 1924년에 만든 동요(설날)이다. 일제 강점기 양력 1월1일 신정(新正)을 설날로 쇠던 일제(일본제국주의)를 까치로 비유했고, 우리민족의 설날인 음력1월1일보다 앞선 시점이기 때문에 <어저께>로 비유했다고 한다.

구정(舊正)음력설은 100년 수난을 견디고 지금의 설 명절이 되었다. 설날이 안고 있는 수난사는 일제 강점기에 음력설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설날이 폐지된 시점은 1896년 1월 1일 대한제국을 건립한 고종임금은 태양력을 공식 역법으로 도입했다. 그렇다고 음력설이 사라지지 않았다. 1907년 당시 총리대신 친일파 이완용은 신정 때 학교에 10일 가량 방학을 주고 관공서와 기업은 공식 휴일이 되었고, 구정에는 조업(일)시키고 학생들이 학교를 못 빠지게 시험을 치루었다. 강제로 방앗간에 떡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설빔(색동옷)을 입은 아이들에게 먹물을 뿌렸다.

대한민국 출범 후 음력설 폐지를 강력하게 밀어 붙인 건 1950년대 이승만 정부 때다. 일제 강점기 <이중과세타파>운동 기조를 그대로 잇는 단호한 조치들을 해마다 시행했다. 음력설 금지는 계몽의 차원을 넘어 <탄압>수준이었다.

1984년 12월 전두환 前대통령은 민주정의당 건의를 받아들여 1985년 1월21일 설날은 민속의 날 이라는 이름으로 부활되었다. 완전히 복권된 것은 30년째다. 1989년 2월부터 정부에서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3일 연휴 음력설이 되었다. 일제 식민지배와 독재정권을 지낸 뒤에야 우리민족의 전통이 살아났다. 양력과 음력,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의 역사적 전통을 국민들은 지켜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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