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맘대로, 무책임한
아무거나 맘대로, 무책임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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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빈/시인
직장인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무엇을 먹을지 늘 고민한다. 뭐 먹지? 그냥 아무거나. 늘 반복되는 대화다. 아침을 먹지 않는 직장인들은 그 시간쯤이면 허기에 차 있지만 날마다 먹는  것들이라 근무지 주변에선 이미 새로운 메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근처에 음식점 개업 광고지라도 붙으면 먹거리 발굴 생각에 다들 반색을 한다. 그것도 몇 번, 이내 식상해진다. 며칠 지나면 뭐 먹을까? 아무거나 먹지의 대화가 변함없이 이어진다.

상대에게 뭘 먹을지 물었을 때 아무거나란 대답이 나오면 참으로 난감하다. 생각이 나지 않아서 물을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물음일 때 아무거나, 알아서 라는 말은 김빠지게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좋다는 뜻이지만 그렇지 않은 의미도 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아무데나 드라이브 가자는 말도 자주 쓴다. 계획된 것이 아니어서 즉흥적인 바람 쐬러 갈 양으로 어디 갈까 하면 그냥, 아무데나란 대답을 자주하고 또 자주 듣는다. 아무데라는 장소는 분명 없지만 모두 해당된다. 그렇다고 아무데라는 말에 무턱대고 차를 몰았다간 낭패를 본다. 겨우 온 데가 여기야? 하는 질책을 받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아무거나 입어, 아무거나 골라, 아무거나 보자 는 등의 표현도 흔히 쓴다.

아무거나와 함께 요즘말로 대략 난감한 표현이 또 있다. ‘맘대로 해’와 ‘다 좋아 한다’란 말이다. 묻지 말고 알아서 맘대로 정하란 뜻과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물은 사람에겐 참으로 어렵다. 맘대로 정하라고 해 놓고선 특정 음식이나 선택을 하면 태클을 건다. 그거 말고 다른 거 하자면서.
위 표현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쓰는 것들이다. 하는 이나 듣는 이나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난감함 빼고는 말이다. 이런 표현들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선택이나 결정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선뜻 결정하기 어려울 때 타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더러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들려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아무거나, 보다는 좀 더 생각해 보고라는 대화로 의견을 압축해 가는 과정이 서로의 예를 갖추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는 우리말이야말로 예의와 기술이 필요하다. 필자는 TV뉴스를 시청할 때 소리에 집중한다. 앵커나 기자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는지 놓치지 않고 듣는다. 언어의 표준이 되어야 할 방송에서조차도 맞지 않는 표현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인터넷 용어를 비롯해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대지만 우리말을 아무렇게 되는 데로 쓰면 되겠는가. 정확한 의미를 담고 소리를 전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우리말에 책임을 져야겠다. 어디 갈까? 갈매기, 수평선 보고 싶어. 남해로 가자. 정확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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