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봄비 오는 소리
진주성-봄비 오는 소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3.22 18: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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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봄비 오는 소리


봄비가 자주 온다. 겨울 내내 눈도 비도 오지 않아서 가뭄이 심했다. 제한 급수를 했다는 소식도 들리었다. 비탈진 과수원이나 시설채소의 비닐하우스도 지표수의 수위가 낮아져 가뭄으로 힘들었단다. 설을 쇠고부터 네댓 차례의 봄비가 왔다.

목마름을 해갈한 단비다. 욕심 같아서는 겨우내 켜켜이 쌓인 미세먼지랑 거리의 묵은 때 까지도 말끔하게 쓸어서 도랑도 강물도 한가득 넘실거리며 씻어갔으면 했는데 욕심 같지 않아서 아쉬웠다. 씻어버려야 할 것이 어찌 거리의 묵은 때 뿐이겠나.

오던 눈이 비로 바뀌어 창밖에는 또 봄비가 내린다. 봄비 오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귀를 기우려본다. 꼭 이맘때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 대나무 잎에 떨어지는 봄비 오는 소리는 잠에서 깨어난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와도 같고 가랑잎 위에 떨어지는 봄비 오는 소리는 잠든 아기의 숨소리와도 같고 동백나무 이파리에 떨어지는 봄비 오는 소리는 모시옷을 입고 걷는 여인의 스쳐가는 소리와도 같다. 봄비 오는 소리를 들으면 간간히 산과 들이 곤한 잠에서 깨어나는 숨소리까지 섞여서 들여온다.

버들강아지의 솜털에 초롱초롱한 빗방울이 맺히면 앙상한 가지마다 올통볼통한 꽃망울이 벌어지는 소리에 매화꽃 향기도 묻어온다. 요새는 눈을 뜨면 귀가 시끄러워 눈을 감아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지금도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히고 빗물이 흘러내린다.

봄비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소리가 시끄럽다. TV고 휴대폰이고 온통 쑤셔놓은 벌통이다.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고 야밤에 걷는 자갈 밟는 소리가 들리며 북풍받이에 너덜거리는 천막의 펄럭거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미-투의 아우성소리에 동백나무 이파리에 떨어지는 봄비소리가 들리지 않고 빨간 동백꽃이 송이송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 모시옷을 입의 여인의 스쳐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포토라인에 선 누리던 자들의 볼멘소리에 댓잎 위에 떨어지는 봄비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진창을 걷는 질퍽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채널마다 떠버리들의 씨 나락 까먹는 소리에 봄비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채용비리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젊은이들의 기지개 켜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비단을 찢는 소리가 아닌 작은 새들이 지저기는 소리를 낭랑하게 듣고 싶다. 동토의 땅 서릿발을 녹이는 봄비 오는 소리가 듣고 싶다. 다가오는 유월 나나니벌들이 뒤엉켜서 왕왕거리기 전에 봄비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우려 본다. 메마른 가지마다 새잎을 움틔울 봄비 오는 소리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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