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행복’의 무게감
아침을 열며-‘행복’의 무게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3.25 18: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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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행복’의 무게감


최근 우리나라에서 ‘행복’이라는 말의 무게감이 비교적 가벼워진 것 같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밝아 보여서 좋게 느껴진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에 집단상담을 할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던 별칭이 ‘행복’이었다. 발 빠른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사용하여 나머지는 다른 단어를 선택해야했다. 누구나 어쩌면 모두가 원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일 테고, 헌법에까지 보장된 권리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았고 행복하길 원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리라.

10년 전이나 20년 전에 누군가 무심코 필자에게 ‘지금 행복하세요?’, ‘당신이 원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바로 ‘무엇’이라고 답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에 많은 욕심과 기대 등의 것들이 엉켜 붙어 있어서 잡으려고 하는데 잡히지 않는 존재와 같이 구체물로 나오기 힘든 광범위하고 거대한 단어였다면 지금의 행복은 그에 비해 아주 작고 소소한 것이다. 단순히 크기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체화할 수 있는가 하지 못하는가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몸이 건강하고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과 잘 지내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전 세계가 평화로운 것 등 구체화되어서인지, 나열과 서술이 되어서인지 차이가 모호하다. 그 당시에도 분명 이러한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에 포함되어 있었을 터인데 더 큰 무언가를 추구했던 것 같다. 행복 그 너머로 말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기엔 너무 여유로운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당장 돈을 벌어야하는 사람에겐 많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겠지만 돈을 버는 것도 크게 보면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최근의 대학가 주변에는 전국적인 혹은 국제적으로 글로벌한 체인점들이 가득하고 구내식당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날마다 소비하고, ‘이 정도는 써줘야 해’, ‘당연하다’는 생각 속에 많은 소비가 일어나고 있다. 소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중들, 어느새 광고에 의해 마음을 움직이고 소비를 학습하고 있다. 이에는 군중심리도 한 몫 하리라. 다른 사람들이 다 하니까, 다 사니까…어느새 소비도 문화가 된다. 광고는 사람을 움직인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들은 또 그들대로 힘들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놓을지도 모른다. 행복의 기준은 사회가 발전해갈수록 더욱 높아질 것이다. 10년, 20년 전에 비해 행복의 기준은 아마 높아지고 다양해졌을 것이다. 보릿고개가 있어 3끼를 못 먹던 시절에는 굶지 않는 것이 행복이었을 테고…

큰 목표는 방향설정과 최종도달범위가 되고, 작은 목표가 오히려 움직이도록 만든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타야지’하는 목표도 세우겠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1년에 여행 1번은 가보자’ 등 구체적인 목표들이 오히려 행동하도록 만든다.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지금 행복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은 참으로 가지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친구이든, 성격이든, 돈이든.

행복과 함께 ‘사랑’이라는 단어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긴 마찬가지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잘 하고 안 되면 더 노력하고 부지런히 공부해야하는 사회적 분위기여서 항상 ‘화이팅!’ 외치며 열심히 살아야 되는 줄 알고 달렸다. 주변에는 행복하다, 사랑한다 이런 감정표현들에 너무 어색하고, 어찌 보면 인색한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니 대체로 무뚝뚝하고 투박한 행동파들이 많았다.

농경사회에서는 변화무쌍한 미래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체로 아버지의 일을 대물림하였다. 또 다른 불평등의 문제는 있었겠지만 예측이 가능한 시대였다면 현재는 아주 변화무쌍하고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필자와 같은 기계치들은 스마트폰마저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현재를 잘 살기도 어려운 시점에서 미래를 잘 살기도 기대하기 어렵다.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 ‘설렘’이면 좋겠지만 ‘불안’도 한몫을 한다. 내 발이 닿아있고 내 손이 만지는 현재를 충실히 살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을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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