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망향(望鄕)의 길
도민칼럼-망향(望鄕)의 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01 18: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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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망향(望鄕)의 길


나는 가끔, 가까이에 있는 합천댐 일주 도로를 혼자 드라이브한다. 이 도로는 벚나무 가로수로 잘 가꾸어져 있어 지역에서는 ‘100리 벚꽃 길’로 부른다. 매년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면, 이곳에서 전국의 수많은 마라톤 마니아가 참가하는 벚꽃 마라톤대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길을 ‘망향의 길’로 부르며 혼자 다니기를 좋아한다. 이 길을 ‘망향의 길’로 부르게 된 것은, 수년 전 우연히 이 도로변 곳곳에 댐 수몰 지역 실향민들이 옛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며 세워둔 망향 비(碑)를 보고서부터였다. 그 후 이 길을 지날 때면, 항상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할 실향민들의 애틋한 향수를 생각하게 되어 내 마음도 찹찹해지곤 한다.

며칠 전, 화창한 초봄 날씨의 유혹에 이끌려 이 길을 또 달렸다. 가로수 벚나무는 지난가을 그 무성하던 잎들을 홀랑 벗어던진 채 겨우내 동장군과 싸움을 하고, 다시 꽃 몽우리를 내밀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먼저 댐 부근의 물 문화관엘 들렀다. 1층 홍보관을 대충 둘러보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가 댐 수몰 지역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다. 그 지역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정겨운 옛 풍경들이 흑백사진으로 나왔다가 사라진다. 마치 어릴 적 내 고향 마을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싸하다. 3층 전망대로 올라가니 합천댐 넓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싸늘한 강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난 가을부터 계속 가물다가 요즘 며칠 비가 내렸지만, 아직도 댐은 허멀건 허리춤을 들어낸 채 배고파 하고 있다.

물 문화관을 나와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도로변 왼쪽에 ‘창마을 동적 비’가 말끔한 신사 차림으로 우뚝 서 있다. 동적 비에는 옛 마을의 유래와 살던 사람들 가구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옆에 있던 이 마을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매년 칠월 백중날이면 실향민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며, 모두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참석하였으나, 세월이 갈수록 실향민 1세대들이 고령화로 세상을 떠나면서 최근에는 몇 사람 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한다.

이 외도 대병지역에는 ‘상천 천내마을 동적비’를 비롯하여 네 곳이나 망향비가 서 있다. 망향 비는 주로 물속에 잠긴 자기 마을 터가 잘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실향민들이 서로 연락하여 가끔 이곳에 모여 서로 근황을 묻고 위로하며, 마을이 있던 곳을 내려다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단다.

대병면을 지나 봉산면 지역으로 들어가 작은 재를 넘으니 먼저 봉계마을 앞 도로변 우측에 서 있는 ‘덕동 망향비’가 기다린다. 옛 덕동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가구주 60여 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옹기종기 이웃사촌으로 정겹게 살았을 그들의 모습을 그려진다. 여기서 1㎞쯤을 돌아가니 댐이 잘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곳에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원하고 실향민과 주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망향의 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제법 높은 망향의 탑과 육각정이 지어져 있고, 동산 표지석 옆에는 대형 오석(烏石)에 수몰민 가구주 명단이 빼곡히 쓰여 있다. 1984년 댐 건설 시 대병, 봉산면 지역 11개 행정리가 수몰되었고, 970세대 4,074명의 주민이 정든 고향을 떠났다.

봉산면 소재지를 지나 다시 댐 순환도로로 내려서 꼬불꼬불한 산속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가니 우측 도로변에 ‘고향정’이란 정각과 ‘골마 마을 동적비’가 서 있다. 그런데 바로 앞 도로변 펜스에 붙어있는 색다른 현수막 하나가 눈길을 끈다. 수몰된 이곳 마을 출신 자녀인 듯한 자매가 언니는 회계사에, 동생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내용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산골짜기, 교통량도 별로 없는 산속 도로변에 이렇게 현수막을 붙여 놓은 것은 고향 산천에 묻혀 있는 조상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또 이곳 출신 실향민들이 지나가다가 봐 주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골골이 망향의 한이 서려 있다.

나는 이 길을 지날 때면 가끔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과 댐 건설로 실향민이 된 사람들의 아픔을 가늠해 보곤 한다. 물론 고향산천과 피붙이를 모두 잃은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에는 못 미치겠지만, 이곳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면서 온갖 추억과 애증이 쌓여있는 고향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실향민들의 마음도 그에 못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나 댐 건설로 한해와 수해를 잊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 아래쪽 사람들, 그리고 여기서 발전한 전기로 편리한 문화생활을 하는 많은 국민은 실향민들이 겪는 망향의 한을 모를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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