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막에서 꽃피운 푸른도시-사마르칸트
칼럼-사막에서 꽃피운 푸른도시-사마르칸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01 18: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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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곤/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관광경영학과 주임교수·경영학 박사

김춘곤/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관광경영학과 주임교수·경영학 박사-사막에서 꽃피운 푸른도시 – 사마르칸트


강렬한 태양과 대사막이 펼쳐져 있는 중앙아시아의 곳곳에는 고대 역사의 흔적과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등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은 과거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요충지로서 동서 문명교류의 관문이자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사마르칸트는 2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아시아 최고의 도시이자 중앙아시아의 진주라 불리는 뛰어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아프라시앞(afrosiyob)이라는 고속열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동서 교통 요지에 있어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렸고 종교와 정치, 외교 통로로서 문명의 산파 역할을 한 실크로드의 심장이었다. 바로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오랜 세월 여러 국가로부터 많은 침입을 받았고 그 결과 여러 민족의 문화와 종교가 섞이게 된 사마르칸트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서 도시 어느 곳을 둘러봐도 고대 유적과 유물이 가득한 아름다움과 위엄이 느껴지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푸른색 타일로 지어진 멋진 돔과 모자이크로 처리된 벽이 인상적인 이슬람 사원과 신학교, 영묘 등은 사마르칸트가 누렸던 옛 영화를 보여주는 상징물 처름 보였다. 제가 방문한 첫 번째 장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아름다운 유적지 위대한 왕, 티무르가 잠든 곳이었다.

▲구르 아미르(Gur-Amir) -지배자의 무덤
‘구르 아미르(Gur-Amir)’라는 티무르의 무덤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중요한 유적지다. 1403 ~ 1404년 티무르가 자신이 아끼던 손자 무하메드 술탄이 이란에서 죽은 것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티무르의 관은 연흑색의 석관묘로 그의 아들과 손자 그리고 그가 존경한 스승의 관과 함께 묻혀있고 실제 관은 4m 아래 지하에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티무르의 무덤에는 전설이 있다. 티무르의 관에는 “내가 이 관에서 나가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소련 연구팀에게 티무르의 유골을 모스크바로 가져와 연구하라고 명령한다. 1941년 6월 약 500여 년 만에 티무르의 관이 열렸다. 연구팀은 티무르의 오른쪽 발이 절름발이였다는 것과 손자인 울루그베르의 목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불행히도 3일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소련에서 수백만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자 유해를 제 자리에 돌려놓자는 의견이 일기 시작했고 1942년 11월 20일 티무르의 유해는 사마르칸트로 돌아온다. 유해를 되돌려준 이후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승리하면서 독일과의 전세(戰勢)를 역전시켰다고 이야기가 전해진다.

구르 아미르는 파랗게 빛나는 돔과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으로 잘 알려져있다. 64개의 홈 조각이 주름처럼 잡혀 있는 푸른 돔은 티무르 시대에 창조된 건축 기법이다. 티무르는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빛을 좋아해서 도시의 모든 건축물들은 그가 좋아하는 푸른색으로 가꾸었다고 한다. 이러한 티무르의 취향이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진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몽골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페르시아와 아랍 문화를 흡수한 독특한 문화로 제국을 발전시켜 나간 그는 수도 사마르칸트를 중앙아시아 최대 문화 중심지로 만든 인물이다.

▲레기스탄(Registan) 광장과 3개의 메드레세(Madrasah)

3개의 메드레세로 둘러싸여 있는 레기스탄 광장은 오늘날 가장 뛰어난 동양 건축물의 집결체로 꼽히고 있다. 메드레세는 중세 이슬람의 신학교를 말하며 레기스탄은 '모래 광장'을 의미한다. 메드레세는 신학과 함께 천문학, 철학, 역사, 수학, 음악 등을 연구하는 종합대학의 역할을 수행했다. 레기스탄에서는 과거 왕에 대한 알현식, 공공집회가 열렸다. 이 광장은 15세기 및 17세기에 두개가 더 증축되어 이슬람 종교 건축물인 울르그벡 마드르샤(좌), 시르도르 마드리샤(우), 티라카리 마드리샤(중앙)에 둘러 쌓여 있다. 지면 관계상 다 설명 할수는 없지만 이 중에서도 티라카리 마드리샤(Tillya kari madrasah)의 내부는 화려한 황금 나뭇잎으로 치장되어 있고 3개의 메드레세 중 가장 화려하다. 티라카리(Tillya kari)란 이름의 원래 뜻은 ‘황금을 입힌’이란 뜻이다.

또한 티무르는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위대한 사원을 건설하고자 했다. 비비하눔 사원(Bibi khanim Mosque)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비비하눔은 티무르가 8명의 아내 중 가장 사랑하던 왕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티무르가 인도를 원정하던 중 사원을 짓던 건축가와 왕비의 부정이 발각돼 이들은 사형에 처해지고 만다. 이후 티무르는 아름다운 얼굴로 남성을 현혹시키지 못하도록 여성들에게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다닐 것을 명했으며, 훗날 이것이 차도르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아직까지 공항과 도로 등 관광인프라가 많이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서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거리풍경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미소에서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그때 그 시절을 돌이켜 보게 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지나간 소중한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는 여행이 되었던 것 같다. 불행하게도 내가 우리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사마르칸트를 여행한 시기에 세월호 사건이 터지어 현지 티비에서 실시간으로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성을 잘 몰랐지만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을 알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그때의 충격과 슬픔은 영원이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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