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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무장공비 청와대기습(奇襲)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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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3  18: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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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무장공비 청와대기습(奇襲)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경찰국 소속 124부대원 31명이 서울의 새금정 고개를 넘어 청와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흘전 1월 17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온 그들의 목적은 청와대를 기습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쏘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와중에 종로경찰서장과 민간인 5명이 피살되기도 했다. 군경의 비상경계령이 내려지고 대대적인 수색작전 끝에 31명 가운데 29명이 사살되고 김신조는 투항했으나 나머지 1명은 도주해 북으로 넘어갔다.

1·21사건으로 이름붙은 청와대 미수사건은 대통령을 암살 하려던 사건이어서 남북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시도였으니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예비군과 육군사관학교가 창설했고 유사시 학생들도 병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군사교육인 교련이 실시된 계기이기도 했다.

684부대는 미쏘간 냉전완화 분위기 속에 해체된 이 부대의 이야기는 영화 ‘실미도’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또 간첩이나 공작원 등 식별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 12자리의 번호를 부여하면서 주민등록번호가 만들어졌고, 1975년부터는 현재와 같은 체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로써 주민등록번호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표식이 됐다.

1968년 한 해에 걸쳐 벌어진 북한의 도발행위는 우리정부와 국민에 반공의식의 전환점을 가져왔다. 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반공을 국시로 받아들이게됐다. 하지만 소위 빨갱이에 관한 증오와 공포가 일반적 인식으로 자리잡게 됐고 집권자는 권력강화에 이용하기도 했다.

1·21청와대 기습 미수사건이 있은지 불과 이틀뒤인 1·23일 원산 앞바다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미 해군 정보수집 보조함 ‘푸에블로함’은 일본에서 출항해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대북 감청 작전중 북한의 어뢰공격을 받고 나포됐다. 교전중 1명이 사망하고 82명이 간첩혐의로 감금됐다가 1969년 2월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그러나 ‘푸에블로함’은 북한이 미국에 대한 승리의 상징으로 아직도 북한에 남아있다.

1999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대동강변에 전시되어 반미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사건은 미 해군 106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1968년 한반도는 북한의 각종 무력도발로 인해 평화분위기가 세계정세와는 반대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11월에 다시 한번 울진 삼척지역에 간첩단을 내려보냈다. 각급 학교에서는 반공교육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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