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동물의 죽음에서 배우는 것들
칼럼-동물의 죽음에서 배우는 것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09 18:5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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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동물의 죽음에서 배우는 것들


기원전 약 800년~750년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에 나오는 티토노스의 이야기를 아는가?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트로이아의 왕자인 티토노스를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그를 납치해 제우스신에게 불멸의 생명을 줄 것을 간청했다. 제우스신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티토노스는 죽지 않을 뿐 나날이 늙어간다. 불사의 생명과 함께 젊음을 함께 달라고 하는 것을 에오스가 깜빡 잊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 티토노스는 한없이 늙어만 갔고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노년기에 완전히 짓눌려 “제발 이 영생을 거둬 가 달라!”고 간청했다. 그가 날이면 날마다 힘없이 흐느끼며, 죽을 능력을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과 그보다 더 행복한 죽은 자의 무덤을 내려다보고 있자, 결국 에오스는 그를 매미로 변하게 했다.

티토노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류가 정말로 원했던 것이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에서 삶의 저 밑바닥은 죽음보다 훨씬 불행하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그래서 죽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삶은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이 가진 본능적인 현상이고, 그 본능에 따라 인간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싸워 왔다. 삶이라는 단어 자체가 죽음을 거부하거나 이겨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듯이 우리는 늘 죽음과 맞서 개인적, 사회적인 차원에서, 더 나아가 역사적인 차원에서 죽음과 맞서고 있다. 살아있어야 무엇인가를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고 슬퍼하며, 소위 살아있음을 느낀다.

반대로 죽음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며, 경험하더라도 돌아올 수 없는 일방향의 것이고 그 길은 어둡고, 두렵고, 강제적이다. 그래서 인간의 상상력은 그 어두운 미지의 세계를 온갖 신화, 종교, 문학 등으로 표현하지만 그것은 상상일 뿐 죽음은 우리 앞에 놓인 영원한 미지의 세계이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는 많은 부분 상징적인 것이며, 심리적인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어떨까? 동물이나 벌레 심지어는 세균, 박테리아까지도 그들의 삶, 혹은 생존을 함부로 버리는 생명체는 없다. 삶의 여정을 마친 동물의 죽음은 그저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루살이는 그 이름 때문에 하루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불쌍한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생의 대부분을 유충으로 살다가 변태를 하여 성체가 되면 단 하루의 짧은 삶으로 생을 마친다. 하루살이는 입도 소화관도 없이 단 하루의 난교 파티를 끝내고 밤이슬과 함께 사라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마귀의 동족 포식 이야기도 있다. 모든 사마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마귀의 암컷은 짝짓기 후 수컷을 잡아먹는다. 한 연구에 의하면 암컷에게 잡아먹힌 수컷은 자손 번성에 확실하게 기여한다고 한다.

물고기 중에서도 가시고기라는 이름의 물고기는 죽음과 관련된 잘 알려진 생명체다. 가시고기 수컷은 둥지를 만드는 순간부터 약 15일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알을 지키고 죽는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줌으로써 종족보존의 사명을 완수하는 헌신적인 생애를 보낸다. 일부러 뱀에게 잡혀 죽음을 맞이하는 두꺼비의 사연도 있다. 죽어서 뱀의 뱃속에 독을 퍼뜨려 다시 뱀을 죽이는데 이런 죽음의 목적은 두꺼비 뱃속의 알들이 뱀을 먹이로 하여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연어는 수백 킬로미터를 거슬러 올라 알을 낳고 나면 며칠 안에 죽는다. 그런데 이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생명을 연장하지만, 원하는 삶을 살지는 못한다. 의료기술이 한 사람의 생명을 1년간 연장했다면 정말 건강하게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진정 얼마나 될까?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래서 영생을 믿어서도 안 되고 영생이 있어서도 안 된다.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한다. 힌두교에서는 죽음을 축복이라고 한다. 벚꽃 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죽음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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