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충무공 이순신 탄신일과 대전승·리더십을 그리며
도민칼럼-충무공 이순신 탄신일과 대전승·리더십을 그리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11 19: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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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창원 참사랑 봉사회장

권영수/창원 참사랑 봉사회장-충무공 이순신 탄신일과 대전승·리더십을 그리며


오는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탄신일 473주을 맞이하는 날이다.

이순신은 서울 군천동(현. 언현동)에서 부친 이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훈련원 병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자 32세의 나이에 급제(及第)하여 권지 훈련원 봉사 실습생으로 처음 관직에 나서게 됐다.

1592년 47세 나이에 정3품(정승급)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직후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무기와 군량미 등을 확충하고 거북선을 건조하는 등 군비 강화를 대비하던 중 얼마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옥포대첩과 노량해전, 고성 당향포 해전, 한산대첩 등에서 왜군과 싸워 전승(戰勝)을 거뒀다.

1957년 정유재란 때는 진도 명량대첩에서 교전 중 왜군을 모두 철수시키는데 전공을 세웠다.

1598년에는 노량 앞바다에서 일본수군과 전선을 벌이다가 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전사하기 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마지막 유언으로 후세에 전해지며 우리나라 역사적 위인으로 평가받아 부상(浮上)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67년부터 이순신 장군을 기리고자 매년 4월 28일을 충무공 탄신일(誕辰日)로 제정해오고 있다.

나라가 어지럽고 위태로울수록 성웅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침몰시킨 대전승(大戰勝)을 이룬 불멸(不滅)의 이순신, 그의 리더십과 위대한 업적은 세계 기록에도 유일하다.

그의 난중일기를 보면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앉아 생각해보니 나랏일이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자빠지듯 곤경에 처해 있는데 나라 안에는 구제할 방법이 없는듯 싶었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1594년 9월 3일 임금이 전투를 독려하는 어명을 받은 뒤에 쓴 글이다.

전쟁 중에서도 이듬해 7월 1일에는 홀로 수로(水路) 위에 기대어 나라의 형편을 생각해보니 위태롭기가 아침이슬 같으니 종묘 (宗廟)사직이 어떻게 될것인가…등 백성들에 대한 애절한 마음도 깊었다.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도 같이 굶고 고통을 함께하며 먹을 것이 있으면 먼저 나눠주고 피난민들의 살 곳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순신 그는 숱한 난관을 뚫고 나라를 지켜낸 성웅(聖雄)으로 역사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순신은 유교적 양반계급의 족쇄에 얽매인 장졸의 능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임진왜란 7년 동안 13척의 배로 23전(戰)이나 출전해 23승(勝利)으로 이끌었다.(45회 출전하여 40회 승리 5무(無)라고도 하고 있음) 또한 이순신은 대민 관계에 있어서도 충군애민(忠君民愛)의 가치관과 민본사상(民本思想)에 바탕을 둔 위민정치(爲民政治)의 표본적 귀감이 되었으며 부하와의 상하관계 에선 인간관계의 의리를 중시하는 올곧은 리더였다.

임진왜란 초기 거제 옥포해전의 대승으로 연안에서 날뛰던 왜적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했고, 한산대첩의 승리는 남해의 재해권을 확보하고 작전태세를 우리 편에 유리하게 전개시킨 거룩한 승전이었다. 또한 명량해전의 대승으로 일본군의 수륙병진 공객에 의한 서울 종묘(宗廟)를 조기 점령 계획을 무산시켰다.

그가 바친 목숨이 해전의 승리로 조선을 구하고 300년간 일본 대륙침략을 막은 동아시아의 위업을 달성한 세계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과 17개의 적전지를 순서대로 적어본다.

▲3대 대첩= 1.한산도 대첩 (충무), 2.명량대첩 (진도) 3. 노량대첩 (남해)

▲17개 주요 전적지= 1. 옥포해전, 2. 합포해전, 3. 적진포 해전, 4. 사천해전, 5. 당포해전, 6. 당항포 해전, 7. 율포해전, 8. 한산해전, 9. 안골포 해전, 10. 부산포 해전, 11. 웅포해전, 12. 당항포 해전(2차), 13. 장문포 해전, 14. 칠천량 해전, 15. 명량 해전, 16. 노량해전, 17. 관음포 해전

이순신은 정의의 외길로 나아간 원칙 주의자이고 바르고 정직 했기에 부하나 백성들의 신망을 받아 국난을 이겨냈다.

필자가 정치인들에게 주문해 본다.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버리고 나라가 시끄럽고 어지러울 때를 대비해 현안들을 풀어나가면서 국민역량을 한데 모으는데 힘을 쏟는 것이 정치인들의 기본 책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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