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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진주 목사 부산대 총장 윤인구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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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1  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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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목사 부산대 총장 윤인구

윤인구(尹仁驅)목사는 부산 구포동에서 부호 윤상은 슬하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 박기종 역시 부산지역 부호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조부 윤종석은 사천군수, 동래군수를 역임한 부호이며 부친 윤상은도 대를 이은 부호인데 구포저축(주)를 설립하고 뒤에 은행으로 개편한 분이다.

발전적으로 경남은행으로 개편하고 임시정부를 위해 독립자금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부자가 모두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윤상은은 광복 후 경남도 재무과장. 재무국장이 되고 장남 윤인구는 경남도 학무과장이 되었다.

윤인구는 부친의 권유를 받아 동래고보에 입학하게 되는데 3학년 재학중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 곽상훈 선배가 경성에서 독립선언서 등을 가져 오자 복사해 동급생들에게 배포하고 시위대열에 앞장서서 투쟁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학교에서 퇴학처분되었다.

윤인구 청년은 구포와 부산진 교회 선교사를 만나 신앙상담을 받고 일제를 잡기위한 목적으로 호랑이굴을 향해 일본으로 진출했다.

명치대학 신학부에 입학해 학문을 배우고 1926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이승만 박사가 재학했던 에딘버러 대학에서 3년간 수업을 받았다. 윤인구 목사는 이미 대제학, 평장사, 부원군의 후손인 방유령 후손 방씨 부인과 혼인해 1남 1녀를 두고 있었다.

미국 프린스톤 대학에 들어가 배울 때 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배우게 된다.

귀국하자 곧 강도사가 되고 1931년 9월 진주교회가 첫 부임지 목사가 되어 약 3년간 시무하게 된다.

1935년에는 마산으로 옮겨 복음농업실수학교 교장 직을 5년간 수행하게 된다.

상경해 1939년 조선신학교를 신학원으로 개편하고 교장으로 취임했다.일제 강압에 의해 폐교된 조선신학원을 해방 후 한신대학교로 발전시킨 공적이 있다. 이어 연세대학교 총장이 되어 공적을 쌓은 분이다.

윤인구 목사가 진주 교회 시무중 아빙돈 성경주석을 발행한 일로 약간의 소동이 있었으나 진주 교회를 벽돌예배당으로 건축한 공적과 함께 옥봉리 교회를 진주교회로 교회 이름을 변경한 공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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