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대로’가로지르는 산행 색다른 묘미
‘신선대로’가로지르는 산행 색다른 묘미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5.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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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사천 향로봉

▲ 수천만년전 한반도 기후와 토양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너덜경
산비탈에 형성된 너덜겅
너덜겅 지날 때는 안전사고에 주의
바위들 불규칙하게 놓여 있어
발목부상 위험…세심한 주의 필요

향로봉(香爐峰 578m)은 행정구역상 고성군 하이면에 속해 있다. 하지만 고성군민 외에도 사천시민들에게도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사천의 와룡산 줄기에 속한 산으로 와룡산 향로봉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산세는 비교적 평범하지만 향로봉 중간지점인 낙서암 앞 갈림길에서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 길을 택해 신선대 새바위 상두바위쪽으로 향하면 각양각색, 돌산 돌너덜의 면모를 한껏 즐길 수 있다.
이 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꼭 권하고 싶은 코스이다. 이른바 ‘신선대로’라고 부르는 신선대쪽에는 너덜겅이 형성돼 있어 이곳을 가로지르는 산행은 여느 산과는 색다른 묘미를 보여준다.
태고 적부터 형성된 바위가 압력과 풍화, 퇴적 등 초자연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신비가 지금시대 우리 눈앞에 드러나 있다.
정상에선 남쪽으로 남해바다와 자란만의 풍경을 열어준다. 남쪽의 산줄기는 흰덤(백암산)을 형성하고 동릉쪽으로는 수태산으로 연결된다.
산 들머리에 있는 운흥사 천진암 낙서암은 불교관련 사찰과 암자이다.
운흥사(雲興寺)는 고성 하이면 와룡리, 이산 들머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 말사.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하나 한편으론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창건됐다고도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유정이 승병 6000명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웠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이 누란의 위기에서 해상작전을 펼치기 위해 이곳을 세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사찰은 왜군이 불을 질러 소실됐고 1651년(효종 2) 법성이 중창했다.
▲탐방코스는 들머리 운흥사 앞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오른다. 운흥사→천진암→낙서암→신선로→신선대 →비로봉→새바위→상두바위→애향교→향로봉→돌무덤→운흥사 원점회귀. 휴식시간포함 4시간이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코스다.

▲운흥사 입구는 100여개에 이르는 돌계단으로 돼 있다. 좌우로는 수백년이 됨직한 벚나무가 오랜 세월 벼락을 맞았는지, 불길에 휩싸였었는지 세월의 굽이만큼 울퉁불퉁 고통스러운 수간을 보여준다. 정면 대웅전에 ‘4월 5일 영산재와 함께 산사음악회를 지낸다’ 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영산재는 임진왜란 당시 산화한 승병과 의병의 명복을 비는 제례. 호국불교의 역사를 안고 있는 이 사찰에선 조선 숙종 때부터 매년 음력 2월 8일에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영산제를 지내고 있다.
대웅전은 맞배지붕 건물로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됐다. 운흥사괘불탱은 보물이다. 1730년 의겸 등 20명이 그린 불화로서 가로 768㎝, 세로 1136㎝에 이르는 대작이다. 괘불탱을 보관했던 괘불궤도 보물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세 번이나 반출하려다 심한 풍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다. 뒷면에 휴정과 유정의 진언(眞言), 영조의 어인(御印)이 박혀 있다. 이 밖에 17∼8세기에 새긴 운흥사소장경판이 있고,1690년에 만든 범종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밀반출 됐다.

▲오른쪽 계곡은 가뭄으로 인해 수량이 많지 않다. 나뭇잎이 하나도 달려 있지 않음에도 울창한 수림이 하늘을 가린다. 일행 중 “여름이면 짙은 녹음으로 햇빛보기가 쉽지 않다”고 일러줬다. 수목사이에 염주를 만드는 보리수가 자생한다.
실개천과 헤어져 10여분 정도 오르면 왼쪽에 천진암. 들어가는 것보다 곧장 올라 아래로 내려다보는 암자풍경이 더 좋다. 동그란 장독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옹기들이 눈길을 끈다.
20여분 만에 낙서암. 이곳 갈림길에서 오른쪽 등산로가 오늘의 코스다. 곳곳에 비럭바위가 곧추 서있거나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기도 하며 사람들은 그 사이사이로 외줄 타듯 올라야한다.
이곳에 너덜겅이 있다. ‘애추’라고도 하는데 돌의 크기 1m짜리에서 부터 작은 것은 50cm짜리로 구성돼 있다. 길이는 눈대중으로 300m쯤 된다.

등산로는 이 너덜겅을 가로지르게 돼 있다.

▲국내 각 산비탈에 형성된 너덜겅은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을 알수있게 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너덜겅은 아주 오래전 지하 수 천미터에서 용솟음친 ‘마그마의 관입’이라는 사건과 이후 한반도에 닥친 ‘빙하기’, 2개의 큰 사건을 거치면서 형성된 산물이다.
먼저 수 억년전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땅속 깊숙한 곳에서 마그마가 지표 가까운 곳까지 관입했고 이어 이것이 식으면서 거대한 화강암류가 형성됐다.
이 중 일부 화강암류는 지표면으로 노출됐고 유구한 시간 속에 빗물의 흐름에 의해 씻기고 깎여 풍화되면서 계곡 부분을 장식하게 됐다.
다음으로는 너덜겅을 형성 하는 데는 빙하기가 일조했다. 즉 암석의 틈으로 수분이 스며든 뒤, 빙하기 속에서도 간빙기를 거치면서 얼고 녹는 과정을 되풀이했고 틈이 더욱 벌어져 갈라져 나온 암석이 산사태가 난 것처럼 너덜지대를 이루게 됐다.
특히 너덜겅은 돌강과는 구분된다. 돌강은 오랜 세월 풍상을 겪으면서 흐르고 깎이고 다듬어져 둥그스름한 형태를 띠지만 너덜겅은 굴러 내리지 못한 탓에 모가 그대로 살아있는 형태를 띤다.
이 외에도 또 다른 형태의 너덜겅은 화강암이 지표에 노출된 뒤 풍화되면서 절리에 의해 분리된 뒤 산 사면을 따라 무너져 내린 것도 있다.
또한 대구 비슬산은 너덜겅과 유사한 돌강이며, 부산 금정산의 너덜지대는 운석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과학적 견해도 있다.
좀더 감상적으로 말하면 너덜겅과 돌강은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생성된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지구의 역사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현실은 현실, 이곳을 지날 때는 안전사고에 주의해야한다. 불규칙하게 놓여 있는 바위로 인해 발목부상의 염려가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너덜을 가로지른 뒤에는 곧장 거대한 바위사이 좁은 길을 올라야 한다. 경사도도 높고 길마저 좁은데다 위로는 하늘이 체구멍 처럼 빼꼼히 열려 있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끝에 전망 좋은 바위가 나온다. 정상에 높이 3∼4m짜리 소나무는 기이한 형상의 분재를 닮았다. 창선 삼천포대교 항구를 오가는 뱃길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이 안부를 30여분 더 오름짓 하면 주능선에 올라선다. 이번에는 오른쪽 바다로 신수도를 비롯한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수우도·사량도 등 남해바다의 섬들이 조망된다. 5분정도만 더 오르면 비로봉이다. 비로봉에서 향로봉까지도 기이한 바위의 향연은 이어진다.
새머리를 닮은 새바위, 곧이어 새바위보다 더 규모가 큰 상두바위가 버티고 선다. 상두바위는 등산로를 약간 벗어나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한번 올라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쉼터가 있는 암반, 바위와 바위를 연결하는 애향교는 산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정상 향로봉은 헬기장이 자리 잡고 있고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사천지역의 산악회에서 제례를 올리는 장면도 목격됐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수태산 무이산으로 이어진다. 멀리 무이산 줄기 문수암(文殊庵)에는 육안으로 볼 수없는 약사전 약사대불님이 카메라 망원렌즈에만 나타난다.
취재팀은 왼쪽 하산 길을 택해 운흥사로 원점 회귀했다. 하산 길은 2가지, 등날을 타고 내려오는 길도 있지만 내려오면서 중간지점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면 물소리 바람소리 여울지는 계곡과 함께 하산할 수 있다.
등날을 타고 내려온 산우들은 중간 어느 지점에서 특이한 형태의 무덤군을 발견했다. 크기도 일반무덤의 2배에 달했고, 흙으로 쌓은 무덤이 아니라 각진 돌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 지역의 특이한 장묘문화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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