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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하동출신 신현중 항일투사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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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9  18: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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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하동출신 신현중 항일투사

신현중(愼弦重)선생은 하동군 적량면 관리 출신이다. 신현중(1910~1980)선생은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재학중 애국 청년.학생들과 반제부를 조직하고 반제국 학생협의회를 결성하고 적우회를 조직케 하고 반제학생 신문 등을 제작·인쇄해 배포하다 일경에 발각되었고 결국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소년시에 부친의 권유에 따라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합격하여 우등으로 졸업했다. 곧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법과에 당당히 합격(1927년)하게 된다.

1929년 3학년 재학할 때부터 조선인 학생들끼리 모여 독서회라는 명칭을 표방하고 겉으로는 독서를 지도하는 것처럼 하면서 비밀 회합을 가지게 된다.

1931년 4월 4학년 재학 중 전남 화순군 출신 조규찬 등 여러 동지들을 모아 서울 관훈동 중화원에서 비밀 모임을 개최하고 1·2·3학년 후배들을 모아 반제부(反帝部)를 조직하도록 지도했다.
또 반제경성도시학생협의회를 조직.결성하고 적우회를 조직토록 지도하고 이형원 안복산 등과 함께 별동대와 같은 조직을 만들게 된다.

항일투사 신현중·신만중·조규찬 등 수백 명이 일경에 잡혀가고 결국 20여 명이 검찰에 송치되었다.

조선일보 1931년 11월 4일자. 동아일보 1931년 11월 4일자 등에 대서특필되었다.

1932년 11월 22일자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선일보 기자 5년간(1935~1940)활동했다.

광복 후 1945년 8월 조선통신사 편집장으로 활약하고 진주여중 교장(1948~1950)이 되고 통영여중 교장(1950~1952)이 되고 부산남중 교장을 3년간 수행하고 부산여자중학교 교장(1959~1961)을 역임해 부산 경남지역의 여성 교육계의 공로자로 기억된다.

진주여중 교장을 역임할 때 쓴 내용을 위주로 수필집 <두멧집>이 남겨져 있는데 아마도 친필로 남겨진 원고를 서울에 사는 후손들이 편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현중 선생에 대하여 1982년 건국공로가 있다고 하여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분이다.

부인 박경연·장남 신경덕이고 손자들은 신규택·신언택 등 있는데 서울 강남방면에 거주한다. 친·인척은 진주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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