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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릴케의 정원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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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9  18: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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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릴케의 정원

개인적으로 나는 2017년을 좀 혹독하게 보냈다. 그 구름들이 조금씩 걷히고 2018년은 비교적 화창하게 지나가고 있다. 잘 아는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헤르만 헤세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번역하면서 봄의 한때를 그들의 정원에서 노닐게 된 것이다. 언어의 정원, 시의 정원이다.

혹 유럽을 여행하거나 거기서 살아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저들의 정원은 정말 예쁘다. 그것을 거니는 것은 작지 않은 기쁨을 선사한다. 그런데 헤세나 릴케의 시집은 그 자체로 실제 못지않은 하나의 정원이 된다. 거기서는 그들의 단어 하나하나가 꽃으로 피어난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니, 어디 꽃 뿐이랴. 거기엔 온갖 나무들과 토끼와 노루와 숲과 호수와 백조와 바람과 하늘과 별과 달이…다 함께 어우러져 놀고 있다. 이런 정원은 나름의 영원성을 갖는다. 그곳의 꽃은 시들지도 않는다. 이건 거의 마법의 세계다. 릴케의 후기 시편 중에 ‘마법’이라는 것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변용으로부터 태어난다/ 그런 조형들은--. 느끼라! 그리고 믿으라!/ 우리는 걸핏하면 괴로워한다, 불꽃이 재가 된다고./ 하지만 아니다 예술에서는, 먼지가 불꽃이 되니.// 여기에 마법이 있다. 마법의 세계에서는/ 그저 그런 말도 상승의 계단을 오르는 듯…/ 하지만 진실이다 그건, 마치 숫비둘기가/ 보이지 않는 암비둘기를 부르는 그 부름처럼.

불꽃이 재가 되는 게 아니라 먼지가 불꽃이 되는 마법…, 그게 예술이다. 특히 릴케는 그런 언어예술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1970년대, 그의 유명한 연작시 ‘사랑’을 처음 읽었을 때, 20대의 나는 거의 전율을 느꼈더랬다.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왔는가/ 혹은 기도처럼 왔는가?/ 얘기해보렴--’…나는 그 시의 따뜻함 속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속절없이 녹아버렸다. 나의 정서 혹은 서정은 그렇게 성장했다.
우리 세대에게는 어쨌거나 그런 세계가, 릴케의 정원 같은 그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거기엔 아름다움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라일락보다 라벤더보다 더 짙은 그의 ‘장미’가 향기를 뿜는다. 그런 걸 ‘좋다’고 느끼는 게, 좋은 줄 아는 게, 그게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지금 그런 릴케의 정원 속을 거닐며 삶의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좀 궁금해진다. 신문에 보니 헐리우드의 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한 지 단 며칠만에 관객 300만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다.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폭탄이 터지고 때려 부수고… 결국 악당은 퇴치되고 영웅은 승리를 거두겠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의 가슴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남게 될까. 할리우드의 자본은 아마도 그런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면서 곧잘 세상을 삭막한 사막에 비유하곤 한다. 욕망으로 굴러가는 세상의 본질이 애당초 그런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의 오아시스 만들기를 나는 철학 내지 교육의 할 일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오아시스… 릴케의 정원 같은 것도 일종의 그런 오아시스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정원에서 좀 노닐었으면 좋겠다. 이 시집이 발매한지 단 며칠만에 독자 300만을 돌파했다는 그런 기사가 신문에 올라오기를… 기대한다면 아마 제정신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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