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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차 종자를 전한 사람은 김대렴이다김기원/경남과기대 명예교수·한국토산차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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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0  18: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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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남과기대 명예교수·한국토산차문화연구원장-차 종자를 전한 사람은 김대렴이다

하동군신문 발행인께서 최근에 쓴 대렴에 대한 칼럼 잘 읽었습니다. 내용 왈, 중국에서 차 종자를 처음 전래하여 왕명으로 지리산록에 심은 사람이 귀당사 대렴(삼국사기 기록)인데 왜 김대렴, 김대렴공이라 호칭하고 추원비를 세웠는냐, 잘못된 비석이므로 빨리 철거해야 하는데 왜 방치하느냐, 그 추원비로 인하여 하동차문화에 혼란을 일으킨다, 관계 기관이 업무 태만하였다고 지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렴, 김대렴공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수차례 있었으나 이번에 하동의 언론이 매우 좋은 시기에 매우 좋은 칼럼 발표로 자리를 마련해 주어 감사합니다. 본 비석명에 중앙일보 고문 이규행씨는 설록차지(태평양 설록지1998,5-6월 회보)에 <김대렴이 아니라 대렴입니다. 정체 불명의 다도, 언론도 책임있다>를 시작으로 차 문화지(2000, 1-2월)기획시리즈, 차 연구가 이재휘씨, 한국차학회 이사 이형석, 뿐만 아니라 개인 및 단체로부터 100여통 서신 전화 등으로 질타를 받고 답하노라 고생한 추억도 있습니다. 2000년도 한국차학회 발표 논제에 <대렴의 성(姓)은 대씨(大氏) 이름은 렴(廉)> 발표논문을 제출됐지만 열띤 논쟁 끝에 결국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 하동군이 발행하는 책자에 대렴으로 표기한 문건 몇 차례 발견되었으나 팥을 콩이라 고집하는 사람잡고 무슨 대화가 될까 싶어 더 이상 논쟁하기보다 생각 자체를 방치하였지만 간혹 질문을 받으며 < 역사의 기록은 사실이나 훈공에 따라 다르게 모시야 한다> 그런 답으로 논쟁을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새삼 하동군신문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지적하였으니 비로소 하늘이 알게 된 모양이라고 감탄사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1981년 5월25일 진주 촉석루에서 한국 차의 날 선포식과 쌍계사 경내 김대렴공추원비 건립 제막식을 성대히 끝날 때까지 어른들을 모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실무와 현장업무를 도맡아 진행한 필자는 다영(茶靈)을 모시듯 성의를 솟았습니다. 추원비 건립 계획에 앞서 중국으로부터 처음 차 종자를 전래한 귀당사 대렴(大廉)의 성씨 존칭 비석명을 두고 고증과 조언을 받고자 역사학자 이성근(정신문화원장, 문교부장관)을 아인 박종한(한국차인연합 부이사장) 선생을 모시고 한국정신문화원을 방문했습니다.

이 원장은 삼국사기 <진덕왕 8년(654)조> 박허거세로부터 진덕왕까지 28왕은 성골(聖骨)에서 나왔고 태종무열왕에서 경순왕까지 진골(眞骨)에서 나오게 되며, 중앙관서의 육두품 관원은 모두 진골이 차지했으며, 오두품은 지방관서 .사두품은 육촌 성씨에서 나오고 사품 이하 평민은 성씨가 없었고, 특히 외래인은 필히 김씨(金氏)란 성씨를 하사받아 임관하였다고 했습니다. 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의 집필법으로 중국 사마천 집필법을 먼저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삼국사기 내용에 수많은 왕과 왕족 출신의 이름이 나오지만 성씨를 기록하지 않았는데 그 예로 태종무열왕은 춘추, 궁예 모두 김씨 성을 가졌고 어느 분은 귀당사 대렴의 성은 대씨(大氏) 이름은 겸(兼)이라 완강한 요구한 역사전공자도 있었습니다. 삼국사기 권9( 신라 본기 9)에 대렴 대현 대혼 등 유사한 이름이 나오지만 대씨는 아닙니다. 신라시대(617-915) 귀당사 123명을 당나라에 파견하였는데 박 김 석 육촌성 이외 대씨는 없으며, 신라인으로 성씨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을 골품제도에 등품을 명시하였습니다.

이상 내용을 총괄하여 보면 귀당사 대렴은 본래 김씨이고 이름은 대렴, 그밑에 공(公)자를 붙인 것은 중국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록에 심게 한 공훈스러운 큰 경사이며 신라가 차나무 재배를 중국으로 공인받게 됨으로 하동군이 차나무시배지가 되었습니다. <왕의 녹차>란 고유 상표의 소유, 차 문화가 생활사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여 그 공덕을 추모하고 존칭의 의미이라 하겠습니다.

하동군민 여러분님 이해가 되십니까. 하동작설차는 하동군민의 얼굴이고 자존심입니다. 이런 공덕을 만든 귀당사 김대렴공을 하동군민들이 왜 대렴으로 불러야 되겠습니까. 하동군민들은 귀당사 김대렴공을 당당하게 부르고 공로를 훈장 합시다, 이웃나라에서는 없는 역사도 조작하면서 지역 문화역사를 사실화로 만들어 갑니다. 필자도 하동군 명예군민입니다. 이의가 있다면 토론광장을 장소에 관계없이 정식으로 제안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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