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화쟁(和諍) 사상을 생각해 볼 때
도민칼럼-화쟁(和諍) 사상을 생각해 볼 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5.16 19: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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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에듀맥스 대표·경찰대학 외래교수

 
김병진/에듀맥스 대표·경찰대학 외래교수-화쟁(和諍) 사상을 생각해 볼 때

바야흐로 남북관계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훈풍을 타고 있다. 이 훈풍을 타고 남과 북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가기를 바란다. 물론 천하가 비록 평안할 지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험하다는 말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전쟁대비에만 치우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뭐든 치우치면 균형을 잃게 되고 균형을 잃으면 무너지기 쉽다. 지금은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에 노력할 가장 좋은 때이고 기회인지도 모른다.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 내부의 시각에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이러한 화해와 협력을 국민의 70% 정도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30%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민주주의의 강점은 바로 이런 다양성에 있다. 그러나 다양성을 핑계로 남북 간의 화해무드를 이념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곤란하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념싸움 때문에 우리 민족은 너무나 많은 아픔을 겪었다. 이산가족의 아픔 등 아직도 그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고, 북한은 차지하고라도 남한도 그 변화를 적응하기에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남과 북이 지금은 이념의 싸움을 할 때도 아니고, 특히 우리나라 내부에서 이념싸움은 국가의 장래에 득이 될 것이 별로 없다.

지금은 여야 정치인들이 이념싸움을 할 때가 아니며, 국가의 장래 비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기이다. 이념싸움은 국민을 편향되게 이끌어 국민을 분열시키고, 소수 정치인들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과거의 정치역사가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적합한 국가의 장래 비전에 대한 정치인들의 경쟁적인 제시야 말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가의 경쟁력을 상승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념싸움을 시도하려는 정치인들을 보며 불교의 화쟁(和諍) 사상이 떠오른다. 화쟁 사상이란 모든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고, 모든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이다. 화쟁 사상은 우리나라 불교의 저변에 깔린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고, 우리나라 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사상이다.

필자는 한국불교의 가장 매력적인 사상이 화쟁 사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최근 들어 사회 전반에서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자 화쟁 사상은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화쟁 사상을 잠깐 들춰보자면 불교교단의 화합을 위한 화쟁과 불교교리의 화쟁으로 대별된다. 교단의 화합을 위한 화쟁은 불교의 계율에 잘 나타나 있다. 불교 교단을 뜻하는 상가(sangha, 僧伽)는 화해, 화쟁의 의미가 있다. 대승의 보살들에게 주어지는 보살계에는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죄를 바라이죄(승단을 떠나야 하는 무거운 죄)로 다루어 엄히 다스리고 있다.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 중 제6인 ‘사부대중(四部大衆)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不說四衆過)’, 제7인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말라(不自讚毁他)’, 제10인 ‘삼보(三寶)를 비방하지 말라(不謗三寶)’ 등의 3계가 이에 해당한다. 신라의 고승들은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이들 계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교단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크게 노력하였다.

지금의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서로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화쟁 사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박태원 교수(울산대)가 인문학 반년간지 〈한국불교사연구〉 제2호에 기고한 ‘화쟁 사상을 둘러싼 쟁점 검토’를 통해 화쟁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박교수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고 본다. 물론 화쟁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최소한 우리나라 이념논쟁에서 만큼은 화쟁이 특효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이념 논쟁으로 국가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미래의 비전을 놓치고, 국민들을 분열시킬 것인가. 우리 내부이건 남북관계이든 화해와 협력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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