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저랑 결혼해요
장인어른 저랑 결혼해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3.1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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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석/한국국제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
아버지의 직업을 들으니 분명 성공했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재력을 들으니 결혼하면 내가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학력을 듣자하니 유전자가 몹시도 좋아 보이고 주변 지인들을 보니 대인관계 또한 대단하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소개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3박4일 귀가 가렵고 ‘넌 얼마나 잘났는데 튕기냐!’며 건방지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온통 아버지 자랑에 따님에 대한 소개는 없어서 장인(그녀의 아버지)과의 미팅인지 헷갈리기까지 하다.

이리저리 피하는 것도 하루 이틀인지라 지연에 엮이고 체면에 떠밀려 키 170에 미스코리아를 만나러 간 자리는 ‘코리아에 있는 모든 미스가 미스코리아구나’ 싶고, 서른 살을 넘긴 아담한 그녀는 아직까지 크고 있는 중인가 보다. 오랜만에 소개 받은 자리가 불편하고 떨리는 듯 대낮부터 찻잔을 내밀어 건배를 청하다 스스로의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지고, 저녁으로 먹기로 한 파스타는 피자 한 판으로 잘못 주문되어 한 입 한 입 나무토막보다 딱딱한데 마주 앉은 그녀는 맨 손으로 식사하는 내가 산속 원주민 같은지 키득키득 거리다가 한심한 눈빛을 날리기도 한다. 어디 살며 무슨 일을 하며 차는 뭘 타는지, 부모·형제들은 건강하게 돈 잘 벌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등등, 그녀와의 청문회를 마치고 나면 나는 어느새 붉은 얼굴로 욕탕에 들어가는 복장을 하고 있고 선홍색이던 속은 간간이 들이키는 아메리카노에 검게 물들어 간다.
톨스토이의 ‘절대 결혼하지 마라’는 말을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나 짝을 찾아 나서기 마련인데 당사자나 부모 중에는 조건적인 만남과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경제적, 사회적인 조건을 맞추어 만났다가도 집이나 혼수, 예물 등을 준비하는 중에 골인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서로의 행복이 다이아몬드 반지나 집의 크기보다는 서로의 배려나 이해, 사랑의 크기에 비례함을 잘 알고 있음에도 직업이나 학력, 경제력, 집안 배경 등이 뒷받침되면 행복과 사랑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만남에 있어서 나랑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인지, 나를 아껴주는 사람인지, 나의 꿈을 소중히 여겨주고 마음으로 받쳐주는 사람인지,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처럼 나를 나무토막위에 얹어서 살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결혼이 각자의 덕을 보는 일이 아닌 서로를 가꾸어나가는 일이었으면 좋겠고 양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신랑·신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고 기쁨이면 좋겠다. 그리고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저만치 내려놓고 항상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였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사랑 교과서’ 또는 철없는 도령과 낭자의 이야기 같은 Boyzone의 ‘No Matter What’이나 Backstreet Boys의 ‘As Long As You Love Me’의 가사 속에 사랑을 키우고 행복을 지키는 열쇠가 있지 않을까. 우리들의 사랑이 언제까지 일지 모르나 ‘바렌보임과 자클린 뒤 프레’의 씁쓸하고 서늘한 사랑보다는 ‘슈만과 클라라’ 또는 ‘이응태와 원이엄마’의 이야기처럼 애틋하고 절개 있는 사랑을 원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비애’ 그림이야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우리의 부모가 자식의 순수한 사랑을 격려하고 가르치며,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라 하였기에 이미 가족으로 받아들인 아들·딸이 부족해 보이더라도 더더욱 축복받은 결혼임을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감히 말씀 올립니다.

경제적인 조건으로 사회적 지위를 바란다거나 사회적 지위를 조건으로 경제적 조건을 제시하는 결혼이 과연 얼마만큼 행복할 수 있을까. 결혼은 각자의 계산에 의한 은밀한 거래여서도 안되고 장인이나 시아버지와 결혼을 하려는 착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배우자가 가진 모든 조건들이 사라져도 따뜻하게 안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소설 같은 사랑을 갈구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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